파묘 천만 돌파 속 풍수 관심...선조 할머니 명당터로 이장 뒤 임금 '발탁'
혈의 자리 명당 중 명당...주변에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등 역대 대통령 잠든 곳
서울시에서 관리하고 종중이 매년 시제, 풍수 전문가들 찾는 명소

조선시대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 묘역이 국립현충원 내 혈의 자리로 알려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 한국의 '왕(대통령)'들이 창빈묘를 중심으로 안장돼 있다.
조선시대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 묘역이 국립현충원 내 혈의 자리로 알려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 한국의 '왕(대통령)'들이 창빈묘를 중심으로 안장돼 있다.

영화 '파묘'가 올 첫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풍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국립서울현충원 내 '명당 중 명당 터'로 꼽히는 곳에 안장된  '창빈 안씨(昌嬪 安氏)'묘(1550년 조성)가 주목받고 있다.

계룡일보는 지난 27일 오후 직접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추모객들에게 물어물어 창빈 안씨 묘를 찾았다. 탐방객 10여 명에게 묘의 존재 여부를 물었으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조선의 묘가 왜 현충원에 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과 붙어 있다. 현충원보다 474년 앞서 조성된 묘역으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4호(1983년 11월 11일)로 관리되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들과 정일형·이태영 부부, 시인 이은상, 광복군 출신 이범석,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한글 학자 주시경, 민족지도자 조만식 등 국가 유공자들이  '혈(穴) 자리'에 있는 창빈 안씨를 호위하고 있는 형국이다.

창비 안씨의 신도비.1550년 이곳으로 이장된 후 선조가 조선 제14대 왕에 '발탁'됐다.선조는 이성계 이후 모계가 다른 첫 조선의 왕이며,  그후부터는 '창비의 조선'으로 알려져있다.  
창비 안씨의 신도비.1550년 이곳으로 이장된 후 선조가 조선 제14대 왕에 '발탁'됐다.선조는 이성계 이후 모계가 다른 첫 조선의 왕이며,  그후부터는 '창비의 조선'으로 알려져있다.  

▲왕을 낳고 품은 곳=풍수가들은 "왕을 낳고, 왕(대통령)들이 쉬는 곳"으로 말하고 있다.

창빈 묘역은 창빈묘를 '동작릉'이라 높여 불렀다. 이장 후에도 130년 가까이 비석이 없었다가 1681년(숙종 7년)에 왕명으로 비가 세워졌다. 

원래 후궁의 묘지에는 신도비가 없지만, 조선왕조의 맥을 이었다는 공을 인정받아 신도비가 세워졌다. 

봉분 주변에는 담장이 둘러 있고, 봉분 앞에는 묘갈(墓碣)·혼유석(魂遊石)·석등(石燈)과 석인(石人) 2기가 조성돼 있다.

봉분 왼편에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왼편에 세워진 신도비는 창빈 안씨 신도비라고도 한다. 

1683년(숙종 9년)에 세워졌고 비신은 화강암 재질에 높이 312㎝, 신고(身高) 204㎝, 폭 63.5㎝이며, 정사각형 형태이다. 

기운이 좋은 터는 양쪽에서 물길이 흐르다 혈 자리 앞에서 하나로 합쳐(水口) 흘러나간다. 

지금은 도로포장 등으로 금세 눈에 띄지는 않지만, 창빈 묘역 양쪽으로 물길이 흐르다 묘역 앞에서 합쳐져 한강으로 흘러나가는 모양새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산은 인물을 키우고, 물은 재물을 창출한다(山主人 水主財)'는 게 풍수(장풍득수)의 핵심이다. 창빈 묘역은 좋은 산(인물)과 생기 넘치는 물(재물)을 다 품어 안고 있는 명당으로 읽힌다.

▲창빈은 선조의 할머니='조광조'(KBS2, 1996년)에선 배우 장연식이, 여인천하(SBS, 2001년~2002년)에는 배우 최정원이 창빈역으로 열연을 했다.

창빈 묘가 주목받는 이유를 중앙일보(2021년 4월 17일)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창빈은 조선 제14대 선조 임금의 할머니다. 연산군 5년(1499년)에 태어나 아홉 살 때인 중종 2년(1507년) 궁녀로 뽑혔다. 스무 살 때 중종의 총애를 입어 영양군, 덕흥군, 정신 옹주 등 2남 1녀를 낳았고, 1549년 5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중종이 죽고(1544년) 다음 임금인 인종이 즉위 1년도 안 된 31세의 나이에 죽자(1545년), 인종의 이복동생인 명종이 왕위에 오르는데 그도 34세에 대를 이을 자식이 없이 죽는다(1567년).

누가 왕이 될지 모르는 어수선한 정국에서 명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선조)이 바로 창빈 안씨가 낳은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이다.

손자가 임금이 된 것이다. 후궁의 손자가 임금이 되기는 조선 건국 이래 처음이었다. 이후 임금은 모두 창빈의 후손이다. 어떻게 보면 이때부터의 조선은 '창빈의 조선'인 셈이다.

1549년 10월 창빈이 죽자 아들 덕흥군(선조의 아버지)은 경기도 장흥에 시신을 모셨다. 

그곳이 풍수상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1년 만에 이장을 결심한다. 지금도 이장이 쉽지 않지만, 당시엔 이장한다는 것은 새로 장례를 치르는 것과 같았다.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까닭에 왕가에서도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장한 지 3년 만인 1552년 하성군이 태어났다. 그리고 1567년에 하성군은 열 다섯 살에 임금(선조)이 됐다."

'할머니 묘의 발복으로 임금이 됐다'는 풍수에 그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현충원의 명당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창빈 묘를 중심으로 좌우 상하에 안장돼 있는 역대 대통령 묘.(출처 중앙일보)
창빈 묘를 중심으로 좌우 상하에 안장돼 있는 역대 대통령 묘.(출처 중앙일보)

건국 후 역대 대통령이 창빈을 중심으로 좌우 상하에 안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현대의 정치인들도 큰 대사를 앞두고 조상묘와 풍수와 연관 지으며 앞길을 개척하는 일을 자주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시절 괴한에 의해 세종시 공원묘지에 안장된 가족묘역이 훼손된 것이 최근의 예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상묘 이전은 대권 쟁취의 성공 여부를 보여주는 대표적 풍수로 알려져 있다. /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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