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호당 최재문(崔在文) 시인. 작가. 칼럼니스트

최재문 시인. 작가. 칼럼니스트
최재문 시인. 작가. 칼럼니스트

전통을 심으니, 향기로 피어났다

 

백두대간 등줄기 좌우로 바다를 거느리고

태백준령 넘어 우측 소백산을 허리춤에 끼고

지리산 능선 따라 고래산 기맥이 내려진 정기는

경상감영의 진산 팔공산을 이루었고

 

팔공산 내룡이 병풍으로 둘러쳐진 대암봉 아래

검덕산의 기운을 받은 생구암이 모이는 혈 자리에

모이못을 파서 거북이 머물게 하였고

 

동구 앞 동쪽 소나무 비보 숲을 만들었고

서쪽에는 느티나무를 심어 악귀의 왕래를 방패 삼아

마을 입구에 회화나무를 심었으니

유교적 이상 공동체 낙토를 이룩할 이곳에

선비가 살고 있음을 온 세상에 널리 알렸다

 

종가 백불고택은 주역의 음양오행에 따라

흐벅진 자태에 원 사각 팔각기둥을 세운 안채와,

보본당, 포사, 대묘, 별 묘, 불천위 사당,

고방채, 행랑채로, 이어지고

동계정 정려각 승모각을 배치하여 종가의 품위와

가문의 위엄과 위계 질서를 세웠다

 

옻골 입향조 대암 최동집 공은 한강 정구의 문인으로

미수 허목과 동문수학하고,

회재 이언적의 백년지객으로

대구 최초의 사액서원 연경서원 도유사로

봉림대군의 스승을 지낸 숭정처사로

 

학문을 심화하고 절의로 벗을 맞이하고

사대부의 품의로 덕을 쌓고 배풀며 주위를 보살폈다

 

중흥조 5세손 백불암 최흥원 선생은

거경 居敬으로 근본을 세워, 극기로 자기를 단속하고,

존성 尊盛으로 실상을 이루어서

위기 지학으로 공맹정주 孔孟程朱 하였으니

 

실천궁행 實踐躬行으로 경 패를 걸어놓고

사상으로 학문과 수양의 원리를 정립하고

사서오경의 학문이 성인의 경지를 이루었으니

경향 각지의 유생들을 선도하는 대유로서

가진 것보다 가지지 않는 것을 버리는 지혜로

 

중용지도 中庸之道를 깨우친 선비로

명분과 의리로 학예 일치와 지행합일로 행하는

 

공의 하루 일상 日常

인시 寅時 새벽 03:00~05:00의 잠자리에서 일어나

부모님과 사당을 둘러 보살피고 집안을 둘러본 다음

보본당에서 가벼운 글을 읽었다

 

묘시 卯時 05:00~07:00

의관을 갖추고 부모님께 문안을 올리고

보본당에서 강론 자료와 하루 일과를 챙겼다

 

진시 辰時 07:00~09:00

조식 후 후학들에게 강론한 다음

집사들과 부인동동약 이행 사항을 점검, 지시하고

찾아온 벗과 함께 학문을 토론하였다

 

사시 巳時 오전 09:00~11:00

오전 일과와 후학들의 지도와 암기 사항을 살핀 다음

방문객을 접대했다

 

오시 午時 11:00~13:00

부모님의 건강을 살피고 보본당에서 강론하고

농경을 순시한 다음 향약의 실천 여부를 점검하고

벗과 친지에게 안부 편지를 썼다

 

미시 未時 오후 13:00~15:00

낮 동안 지친 심신을 위한 명상과 산책을 하며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약초를 구하고

시 낭송 서예 활쏘기 등 취미생활과 후학들에게

강독하고 강론한 다음 가벼운 독서를 했다

 

유시 酉時 17:00~19:00

혼정신성 昏定晨省으로 부모님의 잠자리를 살피고

향약의 진행 상황을 기록 점검하고

역중일기를 쓴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 했다

 

술시 戌時 19:00~21:00

문단속 우마 단속과 부모님의 잠자리를 보살피고

후학들의 학습 진도를 점검한 다음

향약의 진행과 명일 강의 준비와 하루를 정리하는

명상에 잠겼다

 

해시 亥時 21:00~23:00

계획을 실천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였으며

수기치인으로 수도사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은

자식이나 후학들에게도 시청각 교육이 되었다

 

공은 봄가을 연 2회에 향촌에서 향음주례를 열어

향리의 원로를 주빈으로 모시고 향촌 유생들을 빈으로

술 마시는 예절 의식을 행하였다

 

호재와 화목 선린을 권장하며 술자리 예의와

절차를 몸소 행하면서

자칫 실수하기 쉬운 술 예법을 가르쳤다

 

공은 극기복례 克己復禮

를 따라 참다운 도 를 이룩하는 일상과

내가 죽더라도 인 을 이룩한다는 수기치인의 자세로

살신성인 殺身成仁의 도를 행하였으며

 

말과 행동은 거짓이 없어야 하며 불의를 거부하고

배려하며 몸과 마음을 닦아 모범을 보였다

 

공은 지방민에게 주자의 사창제도를 모방하여

향약인 부인동동약을 만들어 공포하고

공약을 통해 요순시대의 대동 사회를 이룩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전부 휴교를 목표로, 선공과는 전세를 담당하고

휼빈고는 진홀과 상장례의 부조를 담당하게 하였다

 

마을 앞 150여 명의 하인 촌을 만들어

이들의 자활을 돕고 공약에 참여시키는

인본주의를 실천하였으니

향촌의 가난과 곤궁을 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이백여년 동안 행한 부인동 동약의 기록이 보존되어

오늘날 새마을 운동의 시원이 되었다

 

공은 충효 사상이 백행의 근본이라 믿고

부모님을 섬기기에 필요한 한의학을 습득하고

운기와 화제를 챙기는데 정성을 다하고

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는 일상이 꽃처럼 피어나서

향촌 사회에 대효 大孝로 칭찬이 자자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상여를 만듦에

주자 朱子의 소방상 小方牀의 제도를 따랐고

산소 아래 움막을 지어 3년간 시묘 侍墓하면서

평소 부모를 모시듯 어버이를 섬겼다

 

이을 높이 산 정조 임금은 홍패와 정려를 내리고

공의 품행이 백행의 근본이라 하여 백성들이

본보기로 삼도록 하였으니 이시대 천하 대효라 했다

 

임란 후 피폐한 민생을 챙기고 나태한 관리와

독선과 아집에 빠진 선비들을 계몽하는 사업으로

영조 임금의 명을 받은 공은

유형원의 반계수록을 교정하여 관리와 선비에게 반포하여

사대부와 관리들의 나태함을 일깨우고

향촌에서 실사구시 사상을 구현하는 실학자로

세자 익위사의찬을 지낸 인품은 품의를 더 했다.

 

안동의 대유 대산 이상정 선생과

예천의 대유 남야 박손경 선생과 함께

대구 옻골의 대유 백불암 최흥원 선생을

이 시대 유림을 대표하는 영남 삼노로 추앙하였으니

 

공이 세상을 하직하자

조정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영 참 참관에 추증하고

옷깃 여미어 가없이 그윽한 울림의 고요로

유림들은 한결같이 애도하였고

순암 안정복 공이 묘갈명을 찬하고

영남 유림의 만장 輓章이 숲을 이루었다

 

영남 유림은 이문중을 백불암 종가라 하였다

 

행과 연이 음표를 그리며 선율로 흐르듯

영고성쇠 4백년 옻골 흙 돌담길은 세상을 굽어 향하고

대구시 중요민속자료 1호로 보존하였으니

국가 중요 민속자료 261호로 안내하는 글에서

전생은 오래된 당신을 본보기라 적었다

 

대구광역시는

백불암 최흥원 선생, 한원당 김굉필 선생

사가정 서거정 선생을 기리는 현창 사업으로

이들 세분 선생의 후손에게

대구를 빛낸 인물로 기념 문집을 봉정하고 예를 갖추었다

 

회화나무에 머물던 가을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바람을 따라 부르는 갈대의 노랫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종가의 보본당

 

취호당 翠湖堂은 선대의 행장에 부복 俯伏하면서

한없이 나약한 어리석은 후손이 누가될까 머리를 조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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