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통 계룡시협의회장 우용하

우용하 민주평통 계룡시협의회장
우용하 민주평통 계룡시협의회장

독서의 계절을 맞아 최근 한 지인의 추천으로 루마니아 출신 유대인 작가 엘리 위젤의 작품 나이트’(Night)를 감명 깊게 읽었다. 위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패전이 짙어가던 무렵(1944), 나치는 인종 청소(말살) 명목으로 수많은 유대인을 가축 수용용 밀폐 기차 칸에 실어 각지의 수용소로 보내는 이른바 강제 수송 작전에 나선다. 위셀 가족이 강제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된 것도 이때다.

수용된 유대인들의 일상은 너나없이 빵 한 조각과 수프 한 접시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비참한 삶의 연속이었고, 혹독한 강제 노동과 영양실조 등으로 매일같이 수많은 수용자가 죽어 나갔다. 나치는 이들 시체를 특수 용광로에 넣어 불태움으로써 흔적까지 없애버린다. 위젤은 수용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이 죽어가는 끔찍한 모습을 목격한다. 이런 일을 겪은 뒤 그는 환멸과 자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낸다. 사실 유대인은 누구나 자신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라는 선민(選民)의식을 지닌 민족이다. 위젤은 그러나 하나님이 선택한 자신들(유대인)에게 닥친 나치의 집단 대학살(할러코스트)이라는 참혹한 상황 앞에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회의에 빠진다. 그래서 그는 평소 암송하던 기도문마저 여호아 하나님을 원망하며 절규하는 기도로 바꿔 바친다. “우리를 모든 민족 가운데서 선택하시어 밤낮 고문을 당하게 하시고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들이 화장장에서 최후를 마치는 것을 보게 하신 우주의 주이신 하나님을 찬미합시다. 우리를 선택하시어 당신의 재단 위에서 학살당하게 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찬양합시다···”

그는 수용소 생활에서 정녕 하나님은 있는가?’라는 화두와의 싸움 속에 결국 여호와 하나님은 없고 사랑도 없고 자비도 없는 지옥 같은 현실 앞에 하루하루 생존에만 매달려야 하는 가련하고 비참한 존재일임을 발견한다.

19452차 세계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연합군이었던 소련군의 나치 수용소 해방으로 위젤은 자유의 몸이 되어 프랑스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이때 그의 나이 16세였다. 그는 이후 파리 소로본 대학을 졸업하고 이어 그곳에서 잡지사 기자로 활동하면서도 10년간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 침묵한다. 그는 그러나 1954년 프랑스 작가 프랑수와 모리아크와의 인터뷰에서 이 침묵을 끝내도록 설득을 받는다. 그 후 그는 수용소 생활의 경험을 회고한 소설 나이트저술에 나서 마침내 1958년 이 책을 발간한다.

나이트의 주요 내용은 루마니아 시게투 고향에서 나치에 의해 가족 및 이웃과 함께 검거되는 상황’, ‘가축 수송차량으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로 강제 이송’, 어머니와 여동생이 가스실에서 학살되도록 선택되는 과정‘, 아버지와 두 자매가 수용소 직원에 의해 강제노동에 선발되는 과정’,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부터 부헨발트 수용소까지 이르는 죽음의 행진 등등의 주제를 설명한다. 위젤은 또 잔인한 수용소 환경에서 인간성을 박탈당한 자신과 동료 수감자들이 겪었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 개인의 영적 투쟁과 신앙의 위기 등도 묘사한다.

이 같은 내용의 명작 나이트가 발간되자 곧 30개국 언어로 번역돼 1,00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미국 고등학교·대학교의 필독도서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위젤은 미국으로 건너온 후 1976년 보스턴 대학 인문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종차별과 기아. 정치적 박해 등 지구촌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폭넓은 활동을 펼친다. 1992년 민족 분쟁이 일어났던 보스니아 사태 때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2011년 시리아 내전 땐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인권탄압 국가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며 비판의 목소리 높이는 데 앞장선다.

이미 세계적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이며 사상가로 변모한 위젤은 1986년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그는 수상 연설에서 “‘나이트의 소년이 자신에게 끝없이 말을 걸어온다고밝히며 저는 소년에게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기억이 묻혀 버리지 않도록 노력했고 애써 잊어버리려는 사람과 싸우려 노력했다고, 그리고 우리는 정말 순진했다고, 세상 사람들은 알고도 침묵을 지켰다고 소년에게 말해 줍니다. 우리는 가담해야 합니다. 중립은 가해자만 도울 뿐 희생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침묵은 괴롭히는 사람 편입니다라고 세에 고했다.

한편 당시 노벨평화상위원회도 보도 자료를 통해 위젤을 이렇게 소개했다. “위젤은 인류의 사자(使者)이다. 그의 교훈은 평화와 속죄, 인간의 존엄성이다. 세상의 악을 대항하는 세력이 승리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고난에서 얻은 믿음이다. 히틀러의 절명의 수용소에서 완전한 모욕과 경멸을 겪은 경험의 교훈이다. 이러한 교훈은 위대한 작가의 작품에 반복하고 깊이가 있는 증언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내전, 테러 등으로 무고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우리 인류는 지구라는 한 지붕 아래 사는, 어쩌면 피부와 인종과 종교와 나라는 달라도 한 형제자매라 할 수 있다. 형제자매와 이웃이 전쟁과 기아 등으로 죽어가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너나없이 손 놓고 나 몰라라침묵하고 있다면 그 침묵이야 말로 위젤의 말대로 괴롭히는 사람 편이 아닐 수 없다. 서양 격언에 침묵은 금이란 말이 있다. 이와 함게 불의를 보고 또는 진실 앞에서 중립이나 침묵은 악의 편이란 말도 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야 말로 나와 당신과 우리의 선택은 과연 무엇이며 누구 편인가?”라고 묻고 대답하고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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