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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참 삶의 나이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학폭심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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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20  13: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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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학폭심의위원장

노안이 찾아온 지 몇 해가 지났다. 돋보기 없으면 책도 핸드폰도 그림의 떡이 된지 오래다. 가까이 있는 사물도 흐릿하게 보이고, 마늘이나 양파 껍질을 벗길 때도 돋보기를 써야 깔끔하게 손질할 수 있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폐경이 시작되었을 때, 이젠 성별 구분에서 벗어나 그냥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음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하지만 급격히 시작된 신체 노화현상으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상의 불편함을 겪어야했고, 불편을 경험하고 나서야 장애인의 입장에서 일상을 들여다볼 줄 알게 되었다. 경험 없는 ‘역지사지’가 얼마나 공허한 언설이었던가?

요즘 내 책상위에는 노년, 나이듦에 대한 책이 많다. 한 기관에서 노년 세대를 위한 강의를 의뢰받고 준비하면서 그동안 나이듦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가 이번에 내게도 가까워진 나이듦과 노년의 삶에 대해 숙고해보는 행운을 맞이했다.

공부를 하면서 ‘노인’은 누구인지, ‘나이듦’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생애주기’에 대한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나는 기회가 되었다. 현재 통상적으로 65세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은 평균수명이 짧았던 오래전 서구 자본주의 노동의 생산성 기준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100세를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는 가장 일을 많이 하고 행복한 건 60세부터였고, 인생의 사회적 가치 역시 60세부터라고 했다. 결국 생애주기는 보편적인 규범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이고, 각자 자기 앞에 놓인 삶을 어떻게 구성하고 재배치하느냐 하는 삶의 태도와 관련된 일이 아닐까 싶다.

한편 노인 호칭을 자꾸 다른 언어로 대체하려고 하는 시대의식과 담론은 신중년, 신노년, 선배시민, 시니어, 액티브 시니어 등 신어를 자꾸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렇게 노인이란 호칭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 자체가 늙음, 나이듦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갖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전통사회에서 노인이 지혜로운 자, 훌륭한 사람에 대한 존칭이었다면 연령차별주의(Ageism)가 심각한 한국사회에서 노인은 생산성이 떨어진 존재, 기능이 약화되고 젊은이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나이듦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연령차별주의가 성차별과 상호교차적이라는 점이다. 은퇴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남성의 은퇴가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남의 의미가 크다면, 여성의 은퇴는 가정 내 역할수행에서 벗어나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중매체에 보여지는 노인 남녀 캐릭터도 사뭇 다르다. 노인 남성은 권력과 지위를 가진 존재로, 노인 여성은 양육과 돌봄, 보살피는 존재의 전형성을 띠는 경우가 많다. 한 방송사 프로그램인 <와썹 K-할매>는 할머니의 따듯한 정과 음식을 외국인 손자 손녀에게 나눈다는 설정인데, 말 안통해서 벌어지는 해프닝에 웃음은 나지만 음식하고 손님 대접하는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노고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아카데미 조연상을 탄 매력적인 배우 윤여정은 영화<미나리>에서 외손자를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갔고, <계춘할망>에서는 손녀를 돌보고, <죽여주는 여자>에선 노인을 ‘죽여주는’ 친절함으로 돌봄의 끝판왕을 장식한다. 만약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이 없는 사회에서도 배우 윤여정은 지금과 같은 배역을 맡았을까?

몇 주 동안 나이듦과 젠더 교차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니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이듦이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임을, 안티에이징이 아니라 웰에이징의 중요성을 느낀다. 세계적인 장수마을로 꼽히는 터키 악세히르 마을을 다녀온 한 시인은 그의 시 <삶의 나이>에서 이렇게 전한다. “사는 동안 진정으로 의미 있고 사랑을 하고/오늘 내가 정말 살았구나 하는/ 잊지 못할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사람들은 자기 집 문기둥에 금을 한 개씩 긋는 다오/ 그가 이 지상을 떠날 때 문기둥의 금을 세어” 묘비에 새겨준다고. 이 숫자가 참 삶의 나이인데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아무리 장수해도 20살이 넘지 않는다고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숫자의 의미가 중요한 것이었다. 내 참 삶의 나이는 몇 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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