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진실과 위선이 갈등하고, 충돌할 때 빚어지는 역작용에 비유한 말이다. 고려후기 시인 이조년(李兆年)은 ‘정도 많으면 병이 된다’며 다정가(多情歌)를 읊었다. 우리는 지금 너무 많아서 병폐가 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의식주 모두가 남아 넘쳐난다. 그래도 행복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가 불평불만의 역설뿐이다. 그 원인은 귀하고 소중한 가치관이 희박해지는데다, 불만과 역설여론을 선동하는 불순집단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것이 언론매체 난립이다. 도농(都農)간 지역 구분 없고, 좌우 간 이념 구분 없이 넘쳐나는 언론매체들의 선동, 선정, 편파, 오보 등의 역설 여론 때문에 진실 여론이 산으로 가야할 지경이다.

지상파방송에서 종편방송까지, 또 종이매체에서 인터넷매체까지 난립하고 있다. 게다가 스마트폰까지 가세하면서 속칭 ‘찌라시’ 정보가 무작위로 유통되고 있다. 많은 음해성 정보들이 홍수를 이루면서 언론의 순기능보다 역기능 폐해가 더 커지고 있다.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는 옛 시조 한 구절의 의미가 새롭다.

甲午년 연말 시국을 달구었던 청와대 문건 유출파문도 불순세력들이 뿌려댄 ‘찌라시’성 음해정보가 불쏘시개였다. ‘찌라시’ 언론은 정치꾼들이 선호하는 음해성 정보가 대세다. 때문에 음흉한 권모술수가 춤추는 정치판에서 이용되기 일쑤다. 지지자를 동원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정적(政敵)에 대한 비난 수단이 되기도 하며, 건전한 비판의 정당성을 훼손하는데도 이용되기도 한다.

세종, 대전, 충남 등 1개 광역자치단체에 출입하는 기자 수만 평균 40~50명에서 많게는 1백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일간, 주간, 순간(旬刊), 격주 간, 월간, 심지어는 언론을 빙자한 ‘찌라시’성 유인물 제작 단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언론인을 자처하며 자치단체 관공서, 혹은 기업체, 사회단체를 출입하고 있다.

종이 매체뿐만이 아니다. 지상파, 종편, 인터넷 매체에서부터 케이불 매체에 이르기까지 언론인을 자처하고, 기자를 자처하면서 떼 지어 몰려다니고 있어 진짜 언론을 구별할 수 없을 지경이다.

공식 통계는 아니지만 일부 관계 공무원의 말에 따르면 전국에 4,000여 개의 언론사가 난립, 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병폐 또한 적지 않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이나 정론직필(正論直筆)의 가치관이 추락 된지는 이미 오래다.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보다도 한 차원 상위적 가치를 누리던 언론의 존재 의미가 실추되고 있다. 난립한 언론들이 취재경쟁 과정에서 오보나 허위보도, 또는 은폐보도 등의 폐해도 따르지만, 언론을 이익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탈법 언론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기관단체나 기업체들마다 광고, 찬조, 협찬 등을 요구하는 언론 등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호소는 통념화 됐다.

충청권역에서만도 보도 협박으로 기업체를 등치다 구속, 단죄된 언론인들이 많다. 최근 어느 중견 기업체는 언론의 횡포에 견디다 못해 사업 터전 이전 선언까지 하고나서는 등 공개적으로 언론 폐해를 호소한 사례도 있다.

언론이 진실을 왜곡할 때 민심은 자칫 불안과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찌라시’ 정보가 망령처럼 뿌려지는 이유도 기존언론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찌라시’ 정보는 깊이가 없지만 얕은맛의 유혹과 해독은 치명적이다. 따라서 음습한 ‘찌라시’ 정보는 기존의 언론 위상까지도 갉아먹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찌라시’ 정보가 민심 불안, 사회 불안을 선동하는 불순집단의 서식 토양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나라를 뒤엎으려는 내란음모집단의 단죄나, 종북 정당의 해산 심판까지 막으려 했던 일부 지식인과 종교인들의 음흉한 행태가 마치 정의의 투사처럼 미화되는 것도 ‘찌라시’ 성 불순 언론들의 기능이다. 많아서 병이되도록 방치한 언론정책의 책임은 누구들일까? 정치 책임이 크다.

/유인석(전 경향신문 중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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