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계룡시의회 의원
김미경 계룡시의회 의원

경남 고성군 영현면 신분리.

 이름도 모를 경상도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서울의 상급학교 진학 시험을 본 소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습니다.

 서울 경복고등학교 교정에서 신입생 합격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소년은 어떻게 기차를 타고 시골로 왔는지는 기억할 수는 없으나, 깜깜한 밤에 도착한 시골 역에 소년을 맞이하기 위해 나오신 면장님과 파출소장님, 역장님과 지역 유지 분들의 환영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지프차에 몸을 싣고 출렁거리는 비포장 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간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다고 합니다.

 아들 다섯, 딸 다섯인 가난한 집안의 10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난 소년은,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생사도 모르는 큰 형님과 원인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작은 형님 대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장손(長孫)의 부담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영남학파의 대가이신 점필재 김종직 할아버지의 후손으로, 어릴 때부터 영민하여 온갖 기대를 받고 있었기에, 서울 명문고 진학은 주변의 기대라는 불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렇게 시작한 서울 유학 생활은 그러나, 얼마 못가 민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으로 인해 끝이 나고, 학교가 남쪽으로 이동을 하면서 소년도 따라 이동을 했고, 부산까지 와서 학업을 계속하려 했으나, 그곳에서 전쟁에 참전을 하면서 소년은 인생의 축이 바뀌게 됩니다.

 그렇게 6·25전쟁에 참전한 소년이 바로 제 친정아버지이십니다.

 평탄할 수 있었던 아버지의 인생을 송두리 째 바꿔버린 전쟁.

 전도 양양한 젊은 청년의 꿈을 앗아가 버린 전쟁.

 약 3년 1개월 간 계속된 전쟁으로 인명 피해는 민간인을 포함해 약 450만명에 달한다는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수치보다, 아버지께 들었던 전쟁의 참상은 방송보다 끔찍했고,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북한에 대한 적개심은 어떤 반공교육보다 확고한 국가관을 갖게 했습니다.

 하지만 6·25 참전 용사의 희생에 대한 보답이 없었기에, 한번 씩 허무한 생각이 드는 것은 아버지께서도 어쩔 수 없었는지..-.

 “누구 덕분에 이 나라를 지켰는데…고마움도 모르는 구나…”고 되뇌이실 때가 많으셨습니다.

 그러다가 국민의정부 시절, 6·25 참전 용사에 대한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참전 명예수당의 지급에 관한 항목이 신설되면서 비로소 적으나마 예우를 받기 시작하셨습니다.

 희생에 대한 예우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희생의 몫을 담당했던 국민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 지를 그때 저는 친정아버지를 보고 알았기에, 희생에 대한 보답은 아무리 늦어도 시작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혼 당시 장교였던 남편과 결혼이 성사될 때 너무도 좋아 하셨고, 제가 군인의 아내가 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던 아버지께서는 결혼 전날 편지로 이런 글도 주셨습니다.

『이마(모자)에 빛나는 계급장 같은 아내는 못 될지라도,

어깨위에 자랑스러운 견장 같은 아내는 어렵더라도,

가슴에 영광스러운 훈장 같은 아내는 아닐지라도,

때 묻은 계급장처럼, 남편의 명예를 더럽히는 계급장의 때 같은 아내,

자랑스러워야 할 견장에 내려앉은, 남편을 망치는 먼지 같은 아내,

얼룩진 훈장처럼 남편이 부끄러워할 아내는 되지 말거라.』

 이 정도로 군인이었음을, 나라를 지킨 참전용사였음을 자랑스러워하신 친정아버지께 6·25참전 용사에 대한 예우를 받는다는 것, 돌아가시고 나면 호국원에 안장된다는 것 등으로 6·25참전에 대한 자긍심이 더 커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신 아버지께서 이번 국군의 날 행사에는 참석을 못 하셨습니다. 20여 년 전에 받으신 심장수술의 후유증으로 9월 25일 수술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2년 동안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신 것이 그 영향인 것 같아, 좀 더 빨리 아버지의 건강을 미리 챙겨주지 못한 자책에 멀리 있는 딸의 마음은 미어집니다.

 6·25 참전 용사에게 더 특별한 예우를 해줘서 기분 좋다고 하시는 그 기념식에 올해는 참석을 못하시지만, 내년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참석하시리라 기대합니다.

 시아버지와 전생부터 사돈의 인연이 있으신지 편찮으신 부위도 비슷하고, 편찮으실 때는 꼭 비슷한 시기에 편찮으신 두 분 아버님-.

 내년에는 두 분 아버님께서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저희와 함께 꼭 여행을 가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아버지!

 제가 얼마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지 아시죠?

 지금의 병마와도 6·25 때 북한군과 용감히 싸워 이겨 주신 것 처럼, 참전용사의 용맹한 기개로 꼭 이겨주시리라 믿습니다.

/김미경 계룡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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