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적 삶의 모습이 ‘프란치스코 파워’

‘일어나 비추어라(이사야 60.1)’-.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맞은 한국 천주교회의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은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한국교회의 모든 신앙인이 선조들의 순교 영성을 본받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과 이웃, 나아가 세계 보편교회에 신앙의 빛을 전하며,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하느님의 빛을 전하는 등불이 되고자 함이라는 게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 측의 설명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올 2월 7일 바티칸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등 124위에 대한 시복(諡福) 결정을 내린 뒤 아시아 청년대회와 시복식을 위해 5개월 여 동안 교황 맞이 준비를 해왔고 마침내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 간 한국을 방문했다.
교황의 방한은 지난 1984년 103위 순교자 시성식 때와 1989년 세계 성체대회 때 방한한 교황 성(聖) 요한바오로 2세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로 25년만이다. 30년 사이 교황이 세계 어느 한 나라를 세 번이나 방문한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순교자의 나라로 분단의 고통을 안고 있는 한국에 대한 역대 교황의 관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여름휴가까지 물리고 한국을 찾은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제6차 아시아 가톨릭 청년대회를 경축하기 위해서고, 둘째는 124위 순교자의 시복식을 집전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이 큰 두 행사 등 4박5일 일정의 교황 방한 행보에 집중됐다. 교황은 방한 첫날부터 떠날 때까지 청빈 겸손 애정의 행보를 통해, 또 정의와 화해 평화의 메시지를 통해 한국과 세계 가톨릭신자는 물론 많은 국민과 세계인들에게 감동과 기쁨, 행복과 희망을 선사했다.
교황은 공항 도착, 대통령 예방, 한국 주교들과의 만남,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 아시아 젊은이들과의 만남,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 미사, 장애우 재활원 방문, 수도자 및 평신도 지도자들과의 만남,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 타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등의 행사를 통해 착한 목자로서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과 애정을 온몸으로 드러냈고, 신앙의 기쁨과 이 기쁨의 나눔이 바로 개인과 나라, 세계의 화해와 평화의 원천임을 천명했다.

-희망에 찬 화해 정의 평화 메시지-
교황은 특히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다.‘,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교황 환영식 인사말)‘, ’순교자들의 유산은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와 죽음의 문화에 맞서 싸우기를 기도한다’(성모승천 대축일 미사 강론), ‘모든 한국인은 같은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기도하자’, ‘형제가 죄를 지었다면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명동성당 평화와 화해의 미사 강론), ‘종교가 다르더라도 서로를 형제로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자’(타 종교 지도자와의 만남)는 등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또 성직 수도자와의 만남에서 ‘교회는 가난해야 하고, 성직 수도자는 이의 모범이 돼야 한다.’,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에서는 ‘결코 좌절하지 말고 화해와 일치 평화를 위해 일어나 용기를 갖고 앞으로 나가라’는 메시지를, 또 이들을 위한 폐막미사에서는 ‘깨어나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이웃을 섬기라’는 희망과 도전의 메시지를 각각 전했다.

-파격 행보, 국민에게 감동 기쁨 선사-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 또한 많은 감동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방문 중 사용할 전용 차량을 소형 ‘소울’로 선택해 검소하고 소박한 일상의 단면을 보여줬다. 교황은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와 124위 순교자 시복미사 집전에 앞선 카퍼레이드에서 환호하는 군중들을 향해 그의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화답했다, 때때로 어린 아기의 머리와 얼굴을 어루만지고 볼과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며 축복하는 등 ‘더없는 아이 사랑’을 드러냈다.
성모승천 대축일에는 미사에 앞서 세월호 피해자들의 손을 잡아주고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유가족이 전한 노란 리본을 달고 미사를 집전함으로써 이들과 고통을 함께하기도 했다. 124위 순교자 시복미사에서도 미사 직전 카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유가족 400여 명이 모여 있던 광화문광장 끝에 멈춰 이들을 향해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린 뒤, 차에서 내려 세월호 사고로 딸을 잃은 피해 유가족의 두 손을 붙잡고 위로했으며 세례받기를 청하는 한 피해가족에게 다음날 세례를 베푸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꽃동네를 방문해서는 50여 분의 만남 시간 내내 사뭇 선 채로 장애 아동들의 공연을 지켜보면서 이들에게 한없는 애정의 눈길을 보냈다. 공연이 끝난 뒤 이들은 물론 이들과 자리를 함께한 성인 장애인들에게까지 다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와 얼굴을 보듬고, 때로는 이마와 볼에 입맞춤을 하거나 껴안아주며 축복해주는 등 착한 목자로서의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 주위의 심금을 울렸다.

-복음적 삶이 교황의 진정한 파워-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한국 방문은 한국 가톨릭교회와 한국사회에 ‘프란치스코 영향’을 오랫동안 남길 것으로 보인다. 교황의 말과 행동이 가톨릭교회는 물론 타 종교, 세계 정치, 세계 경제, 세계인의 의식 등에 미치는 효과와 감화가 바로 ‘프란치스코 영향’이라면 이 힘(파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 힘은 세계 가톨릭의 수반인 교황에게 주어진 권위에서 나온다기보다 교황 자신의 행위적 가치, 즉 복음적 삶이 그 해답이다.
‘복음적 삶’은 ‘예수의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의 삶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삶,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삶이다. 하느님의 아들로 세상에 온 예수는 자신을 낮춰 제자들을 ‘벗’이라 했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며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다.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인류 구원을 위해 마침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았다. 예수의 이런 삶을 온몸으로 살고 있는 것이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이랄 수 있다. 그래서 전 세계가 그의 말과 행동에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
교황은 취임 첫 미사에서 “예수를 증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교회가 아니라 동정심 많은 NGO에 불과하다”는 강론으로 교회가 예수의 본질인 복음적 삶으로 돌아가야 함을 천명했고, 이를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침체된 바티칸과 가톨릭교회 쇄신을 위해 적폐를 도려내려는 그의 용단,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를 질타한 담대함, 마피아에 대한 파문선언 등은 교회 쇄신을 넘어 복음의 뜻(하느님의 뜻)과 멀어져 가는 현대 사회의 ‘쇄신’을 웅변하고 있다.
미화 50달러짜리 플라스틱 손목시계와 낡고 오래된 구두, 방탄차를 거절하고 가장 서민적인 자동차 선택, ‘불평등에 무감각한 사회에는 결코 평화와 행복이 오지 않는다’는 호소, 자신의 생일에 로마 노숙자들을 교황청으로 초청해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과의 나누는 모습은 세상을 일깨워주는 교황의 참모습 중 한 부분이다. 이런 복음적 삶의 모습이 바로 ‘프란치스코 파워’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교황 방한, 한국사회에 큰 변화 전망-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한국 방문은 앞으로 한국 가톨릭교회와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 교회 지도자들의 변화가 예상된다. 교황의 ‘교회 쇄신’은 내용과 속도 면에서 가톨릭교회 지도자에게 일반 신자와 국민을 앞서갈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황은 쇄신 내용을 거침없이 전 세계를 향해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교회 지도자들이 주춤거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런 점에서 교황 방한은 교회 지도자들의 변화를 촉발하는 자극이 될 것이 분명하다.
둘째, 가톨릭 신자가 늘어날 것이다.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뚜렷한 존경 모델이 없고 제대로 된 사회정의 시스템이 미비한 환경에서 ‘옳음’을 갈구하는 잠재 신자들에게 세기적 존경의 실제 모델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은 가톨릭교회의 가치를 귀와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지난 84년과 89년 두 차례에 걸친 교황 방한은 선교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어냈음을 알 수 있듯, 프란치스코 교황의 ‘카리스마’는 가톨릭 신자 증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 자존심을 갖게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은 잠재력이 뛰어난 우수 민족이지만, 오늘의 우리 사회는 우울하고 공허감마저 드는 구석이 많다. 격의 없고 소박하고 서민 친화적인 가난한 교황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기쁨과 희망을 찾게 될 것이다.
특히 교황의 이런 모습은 국민에게 큰 실망의 대상인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게 반성의 기회로 다가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참된 지도자를 목말라하는 이 땅에 그들의 존재가치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한국의 세계적 위상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한국전쟁(6.25)과 분단국가로만 알려진 우리나라가 88올림픽 및 월드컵 개최로 세계 속에 그 존재를 알리고 위상을 높였다면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실시간 뉴스로 전해진 아시아 청년대회 및 124위 순교자 시복식,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집전 등 교황의 행보야 말로 12억 가톨릭 세계에 순교자의 나라 한국을 알리는 더없는 기회가 됐다. 이는 한국의 위상을 한층 더 높이는 계가가 될 것이 분명하다.
다섯째, 남북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반도의 현 상황은 남과 북이 눈앞에 화약고를 두고 서로 대치해 있는 상태다. 이런 대립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교황이 명동성당 ‘평화와 화해의 미사’에서 ‘한 민족 한 형제자매인 남북이 의심과 대립, 경쟁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서로를 용서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3대 세습 정권인 북한이나, 보혁 갈등을 겪고 있는 남한이나 지금 당장 서로를 용서한다는 것은 어렵게 보인다. 하지만 남북 모두에게 ‘용서의 마음’을 일깨워준 이 메시지는 꽉 막힌 대화의 물코를 트고 상호 의심과 대립을 극복하는 문턱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교황이 떠난 너무나도 큰 빈자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떠났다. 방한 4박5일 동안 그가 보여준 겸손과 가난, 사랑의 실천 행보, 화해와 일치를 기원하는 평화의 메시지가 준 감동과 희망, 기쁨과 행복감은 우리국민 마음 속 깊이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다.
서울 공항 도착 때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담아왔다’는 그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우리민족이 겪고 있는 ‘분단’의 고통을 안고 떠났다.
교황이 떠난 빈자리가 너무나도 크다. 이제 이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남겨진 몫이다.
이용웅(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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