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묵 前 시장
최홍묵 前 시장

이른 아침 계룡산을 바라보면 마음이 한결 상쾌해지는 것을 느낀다. 계룡에 살면서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명산 계룡산을 항상 품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계룡산은 태고로부터 끝 없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 속에서 부동하는 자세와 청정한 모습으로 하늘에 귀를 기울이는 듯한 겸손의 모습이 흘러넘치기 때문에 선인들은 이곳에서 참선의 도와 인내를 배웠다.
인간은 자신의 나약과 부족을 절대자에 의지하려는 마음을 앞세우고 기암과 고목, 폭포와 절벽 등 고고한 자태로 지존의 의지를 굽히지 아니하는 산을 찾아서 그 속에서 간구하고 기도하며 명상하는 습성을 키워왔다.
억만 년의 세월 속에서 내 여기 쉬어 가겠노라고 웅자로 버티는 도도한 산의 자태,무수한 생명들이 산을 찾아왔다가는 그 깊은 속마음에 심취되어 마침내 그도 산이 되고 만다. 
계룡산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때엔 교만한 것 같고 잠들어 있는 것 같으나 일단 그 품에 안겨 보면 봄의 빛과 여름의 힘과 가을의 향기와 겨울의 소리에 이내 반하여 침묵하게 된다.
무궁한 세월을 같은 모습으로 버티고 서있는 거대한 뚝심과 무뚝뚝한 것 같은 외모와는 달리 새들의 울음과 나비의 몸짓, 그리고 천 년을 소리 내어 울어가는 물소리를 들어주는 인내와 무한한 도량이 있다.
계룡산은 어느 한 봉우리로 솟은 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가장 높은 천황봉(845m)을 중심으로 에워싼 쌀개봉, 연천봉, 문필봉, 삼불봉 등 여러 개의 봉우리와 긴 능선으로 이어진 관음봉, 황적봉, 형제봉, 장군봉, 도덕봉, 신선봉 같은 낮은 봉오리들을 모두 합쳐서 일컫는 이름이다.  
또한 모든 것을 수용할 듯 유유한 능선,차가운 솔바람 소리도 잠재우는 그윽한 계곡도 있다.
한 순간 속에서도 열두 가지 생각에 잠기어 계룡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수신(修身)의 도가 떠오르는 듯하다.
인간에게 있어서 산은 아버지의 위엄과 어머니의 자비와 절대자의 신성불가침의 경지를 일깨워 주는 영원한 스승이다.
산은 그 자체가 청순하기 때문에 공해가 없고, 그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허욕이 없고, 그 모습이 단아하기 때문에 가식이 없다.
산이 좋아서 산을 찾는 인간들의 발길이 오히려 산과 인간들에게 공해가 되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선인들은 산은 선과 통하는 길이요, 도와 통하는 길이고, 시와 통하는 길이며, 예와 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시인 김삿갓(병연)은 기암절벽 바윗등에 홀로 웃고 서있는 한 떨기 꽃을 바라보면서 감동을 금치 못하였고, ‘산도 깊고 물도 깊고 나그네 마음도 깊다’고 노래해 고고한 경지로 받아들인 도사임에 틀림없다.
고고히 서있는 계룡산에는 화려한 말솜씨 보다는 침묵의 고귀함이 있고, 철학이 있으며, 돈과 명예를 거머쥐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인간들을 향하여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계명을 일러주는 위엄이 있다.
계룡산도 매일 아침마다 이런 메시지를 계룡시민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계룡에서 살면 이런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계룡을 떠나지 못하고 계룡에서 사는 이유일 게다.
/최홍묵 전 계룡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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