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착각에 못 생긴 여자는 꼬이기 쉬운 줄 안다, 여자들의 착각에 남자가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되면 관심 있어서 따라오는 줄 안다, 아기들의 착각에 울면 다 되는 줄 안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하나 더 추가해서 시어머니 착각에 며느리에게 잘 해주면 딸 되는 줄 안다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만 둘 있고 딸이 없는 나는 남들이 말하는 그 착각을 즐겁게 하고 사는 시어머니다. 작년에 직장에서 은퇴하고 아예 계룡시로 이사온 후에는 며느리들을 곁에서 자주 도와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서울 갈 때마다 김치에 국에 반찬을 양껏 해서 갖다주는 걸로 대신하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면역력이 약한지 폐렴에 수족구에 어린이집에서 도는 병은 돌아가며 다 걸리는 작은아들네 손주 ‘준우’ 때문에 더 안타까웠다. 직장 다니는 엄마들이 수족구나 감기 같이 전염성 강한 병이 걸린 자기 애를 다 낫기 전에 어린이집에 보내니 면역력 약한 아이는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그런 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준우에게 지난 여름은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어린이집에서 좀 떼어놓아야 좋을 듯하다고 아들 며느리가 의논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며느리는 작년 가을 계룡서 지은 한약 조금 먹인 것이 효과를 보아 겨울을 잘 넘긴듯 하다며 다시 먹여보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그래서 손주 ‘준우’가 7월 21일에 와서 26일까지 계룡 우리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한 번 해본 일이지만 봄과 달리 여름엔 날이 더워 아이 데리고 있을 일이 걱정되었다.
월요일인 22일에 우선 한의원에 준우를 데리고 갔다. 사실 어린아이 때 보약 잘못 먹이면 안 된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면역력 증강에 다른 방법이 없어 한 번 더 먹여보기로 했고 다행히 준우는 한약을 잘 먹었다.
한여름이니 에어컨 시원하게 켠 실내에서 좀 놀면 좋을 것 같은데, 어디 애들이 그런가? 마당에 나가 고추 따는 것도 신나고 잠자리 쫓아다니는 것도 신이 나는 준우는 잠시도 방에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그렇지 않아도 모기가 걱정 되어 긴팔 긴바지를 입혀서 내보냈지만 지천으로 널린 모기가 늙은이 살이 아닌 애기 살맛을 보더니 낮에도 밤에도 준우만 물어대서 다음날인 23일 아침엔 손등이 퉁퉁 붓고 종아리에 얼굴에 뻘건 혹이 여기저기 생긴 것이다.
아침에 그런 애 모습을 보고 우리는 기겁을 했다. 집에 돌려보내기 전에 가라앉아야 할 텐데... 이런 약 저런 약 발라줘도 가라앉지 않는다. 걱정이 되어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찰을 다 하게 되었다. 그런데 병원에 가 보니 주민등록번호를 알아야 한다지 않는가?
평소에 알아둘걸. 사실대로 말해도 좋으련만 며느리가 놀랄 것 같아 한약 짓는데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전화로 물어서 해결하였다.
다음날엔 전주까지 기차를 타보기로 했다. 워낙 준우가 기차를 좋아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인데 계룡에서 전주는 기차로 한 시간밖에 안 걸린다. 기차는 휴가철이라 사람이 많지만 왕복표를 예약하면 된다.
날이 너무 더워 전주비빔밥 먹고 한옥마을 좀 돌다 다시 돌아왔다. 애 몸 보하라고 보냈더니 더위에 애 데리고 돌아다녀 몸 축냈다는 소리 들을 것 같아서였다. 내 자식과 달리 손주는 더운 날씨도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어린이집 가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여기서 뛰어다녀 몸이 나아진 건지 계룡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준우는 훨씬 생기가 돌았다. 내친 김에 바다 구경을 시켜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차로 가서 그대로 섬에 갈 수 있는 곳을 찾으니 위도였다. 군산 새만금을 지나 격포항에 도착하여 차째 페리에 타고 위도로 갔다.
예약한 민박을 찾아 짐을 풀고 나서 물금해수욕장에 갔다. 한여름인데도 사람이 거의 없어 우리가 바다를 통째 전세낸 듯했다. 준우는 한번 바닷물을 먹더니 아예 물엔 안 들어가고 모래장난만 한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저녁엔 물 빠진 갯벌에서 조개 캔다고 나섰다. 물 빠진 갯벌 바위엔 온통 작은 고동 천지여서 손으로 훑기만 하면 되니 준우는 신바람이 났다. 민박집에서 차려주는 밥은 온통 바다냄새가 나는 별미라서 준우도 잘 먹었다.
다음날 계룡으로 다시 왔다. 준우는 다시 마당을 뛰어다니고 잠자리며 나비를 쫓아다니느라 바쁘다. 나는 그런 준우가 돌에 걸려 넘어지지나 않을까, 연못물에 빠지지는 않을까 안 보이기만 하면 걱정이 되었다.
이래저래 손주는 걱정거리지만 손주랑 노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같이 블록도 쌓고 자동차 놀이도 하고 책도 읽어주고 맛있는 것도 해먹이고... 자기 전에 책 읽어주거나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일도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 일이 아닌가?
26일, 이제 돌아갈 날이 왔다. 이번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2시간만에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는 며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빨리 만나고 싶어 반일 휴가를 내고 며느리가 나온 것이다.
아직도 손에 다리에 남은 뻘건 모기 자국을 보여주며 긴바지 긴팔옷을 입혔어도 그랬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전화로 주민등록번호를 물은 이유도 실토하니, 며느리는 “여름에 애가 모기 물리는 건 당연하지요.” 하면서 나 편하게 말해 준다. 준우가 신나게 놀았는지 좋아 보인다는 인사도 하니 다행이다. 손주는 올 때 모습 그대로 돌려보내는 일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다시 하고 있는데 말이지.
6일간의 준우 이야기로 또 하나의 앨범을 만들어 보며 손주와 놀기를 되새겨보았다. 할머니의 착각에 손주 예뻐하면 손주도 할머니 좋아할 줄 안다는 게 있나 없나 모르겠지만 손주 사랑은 짝사랑이라는 말은 분명히 있다. 착각이라도 좋고 짝사랑이라도 좋다. 정말 정말 예쁘니까. 손주 얘기하려면 돈 만원 놓고 하라는 말도 있다. 돈 내놓으라면 그러지, 뭐!
/이홍자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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