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의 시인 헤시오도스가 지은 신통기(神統記)에 인류의 첫 여자 판도라 이야기가 나온다. 헤시오도스가 살던 당시만 해도 많은 신을 섬기던 때였다. 이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최고의 신인 제우스의 불을 관리하는 신이었다. 그는 인간의 비참한 삶을 불쌍하게 여겨 제우스를 속이고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다.
불을 사용하게 된 인간은 행복하게 된 반면에 거만해 진다. 제우스는 인간의 오만함을 벌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판도라를 만들게 하고 마침내 에피메데우스의 아내가 되게 한다.
신들은 판도라의 결혼 선물로 번뇌와 괴로움으로 가득찬 하나의 상자를 준다. 그러면서 결코 뚜껑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일러둔다. 그러나 호기심으로 가득찬 판도라는 결국 상자의 뚜껑을 열게 된다. 그러자 온갖 질병과 재앙의 악령이 튀어나오게 된다. 모든 인류의 불행이 시작된 것이다. 상자에는 오직 한 줄기의 희망만이 남게 된다.
헤시오도스가 전하는 인류의 첫 여인 판도라에 대한 이 이야기는 비록 신화이지만 인간의 불행과 고통의 원인이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인간 실존의 원초적인 의문에 답변을 주고 있다.
또 바이블의 창세기에도 인류의 타락 장면이 나온다.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따먹되 죽지 않으려거든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도 만지지도 말라는 명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금단의 열매를 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으며 오히려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뱀의 꾐에 빠져 하느님의 명을 거스르게 된다. 그들은 뱀의 말대로 눈이 밝아져 선과 악을 알게 되나 대신 고통과 죽음을 불러들이게 된다. 이렇게 비참하게 된 인간에게 하느님은 뱀의 머리를 짓부술 구원자를 약속한다.
희랍신화나 성경의 창세기 설화나 모두 인간 불행의 원인은 오만과 교만에서 비롯됐음을 알려 준다. 사실 인간의 본능은 행복하게 되길, 아니 죽음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행복을 갈구한다.
막상 인간이 자신의 능력으로 행복하게 될 수 있고 또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라면 인간이 곧 신이므로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신이 아님은 인간 스스로 더 잘 아는 일이다.
희랍 신화나 성경의 창세기 설화가 주는 또 하나의 유사점은 비록 인간에게 고통과 재앙과 죽음이 있을지라도 희망과 구원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 속엔 고통과 불행이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바로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이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희망은 삶에 대한 보람과 가치에 생기를 돋게 하는 생명수와 같은 것이다. 희망이 없는 삶, 그 것은 곧 죽음이나 다를 바 없는 비참 그 자체이다.
희망은 개인뿐 아니라 가정과 이웃, 사회와 국가, 인류 모든 공동체에게 내일을 있게 하는 행복의 표지다. 그러나 희망이 정녕 값진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너와 나만의 희망만이 이뤄지길 바라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희망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내는 남편의 희망이 되고 남편은 아내의 희망이 되며, 기업주는 근로자가, 근로자는 기업주가 각기 희망이 되며 나라는 국민이, 국민은 국가가, 부자 나라는 가난한 나라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새해를 맞아 나와 너, 아니 이웃과 사회와 국가, 국가와 국가간 인류 모두가 서로의 희망이 되어 주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이용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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