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로부터 은혜를 입거나 신세를 졌을 때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것은 마땅한 예의요 도리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너 나 없이 추구하는 덕목 중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마음과 행동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말 한 마디에 천 양 빚 갚는다'는 속담이 있듯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가 상대를 감동시킴은 물론 때론 상대의 생각이나 마음을 바꾸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마움'이란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나 느낌을 뜻하는 순수 우리 낱말이다. 감사(感謝)란 같은 뜻의 한자어다.
'고맙다'의 말 뿌리(어근)는 '고마'에서 왔다고 한다. '고마'는 '신(神)에 대한 '존경'을 뜻하며 여기에서 나온 '고맙다'는 어휘는 신에게 하듯 상대를 존귀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는 의미다.
일상에서 고마워하고 감사해야 할 것은 참 많다. 예컨대, 지금의 너와 내가 한 생명으로 태어나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요 감사할 일이다. 제대로 생긴 이목구비와 건강한 5장6부를 갖고 태어난 것만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특히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낳아 주고 먹여 주고, 입혀 주고, 교육 시켜 주고, 길러 준 부모야말로 가장 큰 감사를 드려야 할 대상이다. 또 내 삶에 직간접으로 혜택과 영향을 준 형제자매와 친인척 동료 벗 이웃 학교 스승 선배 직장 기업 지역사회 국가 등 크고 작은 공동체 울타리 또한 감사의 대상이다.
돈만 있으면 바라는 모든 것이 해결되는데 감사할 게 뭐 있느냐 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먹거리와 집 옷 등 인간 삶의 기본 요소인 이런 것들을 생산하고, 만들고, 공급해 주는 이들이 고마움의 대상이 아니 것은 아니다.
진화론자들은 인류의 기원이 250만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그 진위야 어떻든 그때나 지금이나 지구라는 땅 덩어리와 공간, 낮과 밤을 밝히는 태양과 달 별 등의 천체, 우주 공간 등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 세상과 우리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태양과 달과 별 등 빛이 없는 지구, 밤과 낮이 없는 지구, 공기가 없는 지구, 토양이 없는 지구, 물이 없는 지구, 그래서 온갖 생물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를 상상해 보면 지금의 이 세상과 함께 인류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섭리요 신비요 현의(玄義)다. 이 또한 고마움과 감사의 대상이다.
이뿐 아니라 현대사회를 가능케 한 인류의 문명과 문화, 각종 문명이기(文明利器), 언어 문자 전통 윤리 도덕 미풍양속 학문 과학 의술 사상 종교 예술 제도 체제 건축 음악 산업 등 이들 유산 또한 어찌 감사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끊이지 않는 전쟁과 기아, 폭발적인 인구 증가 속에 한정된 면적과 자원을 갖고 살아가는 200여 나라 60억 인류가 단 하나 밖에 없는 지구 공동체의 공존을 위해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 또한 넓은 의미에서 감사의 대상이다.
아무튼 인간은 넓게는 자연이라는 우주와 이 세상, 좁게는 가정과 배움터, 직장과 단체 지역사회 국가 지구촌이라는 범주 안에서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로부터 도움과 신세를 지며 살아가는 존재다.
이렇듯 세상엔 고맙고 감사해야 할 것들이 넘쳐남에도 이를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마음은 오히려 무뎌져 가고 있지 않나 싶다.
'은혜를 모르는 놈은 개 • 돼지만도 못하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언젠가 인간의 식탐으로 희생될 개 • 돼지도 먹이를 주는 주인만은 알아보고 꼬리를 치며 반긴다. 이는 개 • 돼지도 주인의 은혜를 안다는 비유의 얘기다.
헌데 요즘 세상엔 입은 은혜에 고마워하고 감사하기는 커녕 배은망덕한 이들이 넘쳐나니 걱정이다. 게다가 이들 거개가 잘나고 똑똑하고 많이 배운 지도층이라는 게 더더욱 문제다.
연로한 부모를 구박하고 때리고, 심지어 내다 버리기까지 하고, 재산 상속에 눈이 뒤집혀 부모 형제를 독살하고 불태워 죽이는 등의 패륜이 그렇고, 나라 녹 먹으며 국민 위에 군림하는 이들의 권위주의와 이들의 여전한 비리와 부정이 그렇다.
또 뇌물 수수와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전관예우 등 지도층의 부패 관행이 그렇고, 국민의 지지와 성원은 아랑곳 하지 않고 민생마저 모르쇠한 채 당리당략과 정권욕에 사로잡힌 직무 유기의 정치인들 역시 그렇다.
이 뿐 아니라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세 확장과 땅 투기, 중소기업 죽이기 및 가격 담합을 통한 소비자 우롱 등의 횡포가 그렇고, 부실 불법 대출의 저축은행 비리와 높은 수익으로 저희들 끼리만의 잔치에 취한 금융권과 카드회사 등의 집단 이기주의가 그렇고, 수 십억 비자금 조성 등 재단 및 개인 배 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사학 등의 비리 행태가 그렇다.
나 홀로 똑똑해서가 아니라 내 이웃과 사회, 국가가 있기 때문에 나의 삶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에 감사하는 마음-. 너 나 없이 이런 마음으로 돌아올 때 우리사회는 좀 더 나아지고 밝아지지 않을까?
이용웅 주필

저작권자 © 계룡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