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 자유기고가

최영민 자유기고가
최영민 자유기고가

무인도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무리 혼자 지내기를 좋아해도 장기간의 격리와 거리두기는 행복하지 않다. 행복이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상태라면,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일까? 한 심리학자는 행복의 비법 중에 최고는 여행이라 했다. 여행은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기에 새롭고 즐겁다. 여행가서 하는 것이 주로 걷고 놀고 말하고 먹는 것이니 여행은 행복 종합선물세트 같다. 특히 여행을 함께 하면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면 그 사람의 행동과 생각의 배경이 되었던 인생이야기를 듣게 되고 ‘아, 그래서 그랬구나.’ 공감하면서 더 가깝게 느껴진다.

3월 말부터 비대면으로 주1회 2시간씩 사람들과 그림책 여행을 떠나고 있다. 여행 안내자인 나를 포함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과 그림책을 읽고, 대화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제임스 길리건은 “열린 마음과 가슴으로 듣는 신뢰할만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고 했다. 그림책 여행을 함께 하며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통해 어떤 존재인지 재확인하는 하는 작업에 함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주는 ‘대화’를 주제로 그림책 『흔들흔들 다리에서』(기무라 유치치 글, 하타 고시로 그림, 천개의 바람, 2016)를 읽었다. 통나무 다리 위 우연한 만남과 대화라는 아우트 라인을 따라 펼쳐진 여우와 토끼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이 살갑고, 현실과 달리 약육강식이 아니라 상호공존의 역전 드라마에 안도감을 평안함을 느낀다.

줄거리는 이렇다. 며칠 동안 세찬 비바람에 다리가 망가졌고, 강 위에는 가운데 버팀목만 있고 양끝은 허공에 떠서 제 멋대로 흔들흔들 통나무 다리 하나만 남게 되었다. 사냥감으로 생각하고 토끼를 쫓던 여우와 쫓기던 토끼가 그 통나무 다리 위에서 불안한 동거가 시작된다. 여우와 토끼는 자칫 균형을 잃으면 강물로 풍덩 빠져야 하는 상황에서 동병상련의 처지가 되어 밤을 맞이한다.

캄캄한 어둠이 토끼와 여우를 감싸면서 둘은 두런두런 대화를 시작한다. 여우는 말한다. 이런 곳에서 밤을 새우기 싫고, 자신은 어려서 겁쟁이였으며, 겁이 나니까 나무 덤불도 무서운 얼굴로 보이고, 자기는 무서운 기분이 들면 금세 오줌이 마려워진다고. 토끼는 여우 말을 듣고 맞장구를 친다. 자기도 밤이 되니 귀신이 나올 것 같고, 아무도 없는데 돌아보게 된다고. 자기는 무서운 기분이 들면 으악 소리를 지르는데 여우도 무서운 게 있냐고. 아슬아슬한 통나무 다리위에서 둘은 서로 적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끝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스르르 토끼가 잠이 들어 숨소리만 들리자, 여우는 소리친다. “토끼야! 얼른 일어나 지금 잠들면 떨어져 죽는다고! 좀 더 목숨을 소중히 여겨!”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여우와 토끼는 구사일생으로 숲으로 돌아온다. 여우는 퍼뜩 제정신으로 돌아와 자기 포지션을 찾고 토끼를 뒤쫓다가 문득 멈춰 생각한다. “아참, 나는 무서운 후에는 오줌을 눠야 하지.” 그리고 천천히 오줌을 누면서 이제 붙잡히지 말라고 토끼에게 소리친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명제 앞에 이런 문장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 대화하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말하기가 곧 대화는 아니다. 상대가 들을 준비가 안 되었는데 계속 말하는 것을 ‘지나가며 던지는 말’이라고 한다. 수많은 정보를 주고받고, SNS에 일상을 공유하는 세상에 살지만 우리는 대화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대화는 관계를 맺는 일이며, 자기는 물론 타인의 생각과 감정까지도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 토끼를 쫓던 여우가 스스로 포획의 질주를 멈추었듯이. 낙엽 한 장 떨어지는 것을 보며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며 (김사인, <조용한 일>) 작은 나뭇잎 하나에도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듯이. 그래서 더 기다려진다. 유쾌하면서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림책과 함께 떠나는 평화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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