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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움에 사무칠 때최영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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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18  16: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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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민(자유기고가)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라는 말을 들었다. 나도 친구를 미워하기로 했다. 밥을 먹으면서 미워하고, 숙제하면서 미워하고, 배드민턴을 하면서도 미워하고, 목욕을 하면서도 미워하고, 잠을 자면서도 미워했다. 미움은 계속 자라서 몸을 휘감고, 점점 커져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 찼다. 팔에 부스럼이 났을 때 자꾸 긁지 않고 신경 쓰지 않아야 낫는다는 엄마 말이 생각났다. 미워하는 마음도 가만히 기다리면 사라질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이상하게 싫은 사람을 자꾸 떠올리면서 괴롭다. 친구도 나를 미워하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더 이상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조원희 작가 그림책 ‘미움’ 줄거리다.

그림책 표지엔 한 아이가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 것 같은데 화가 났는지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목에는 방금 삼킨 음식이 가시 형태의 물고기 모습으로 목 가운데 툭 튀어나와 있다. 물고기 얼굴도 화가 나있다. 가시물고기 앞 말풍선에 이렇게 적혀있다. “꼴도 보기 싫어!”

살면서 ‘네가 싫다, 보기 싫다,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보다 더 듣기 힘겨운 말이 있을까? 존재의 부정과 거부 경험은 삶의 의지와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사람들은 상처받기 쉽기 때문에 또 쉽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존엄한 존재로서 경험의 부재와 존중과 인정의 기대가 좌절될 때 상대를 비난하고, 자기보호를 위해 선제공격을 선택한다. 크고 작은 싸움의 본질은 항상 존엄 훼손의 문제다. 다른 사람이 내 가치를 결정할 수 없고, 스스로 나는 존엄하다고 수백 번 암기해도 심리적 타격 앞에 지성이 감정을 압도하기엔 우린 너무 취약한 존재다.

이 그림책 압권은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는 아이의 성숙한 결심보다, 미움과 분노에 휩싸였을 때 어떤 상태인지 보여주는 탁월한 그림들에 있다. 점점 커진 미움에 포획된 아이가 식충식물과 쇠창살에 갇히고, 급기야 아이의 한쪽 발에 긴 쇠사슬이 매어있고, 그 쇠사슬 끝에 친구 얼굴이 그려진 그림은 족쇄가 된 미움의 무게를 신랄하게 표현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를 쓰고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미워하는 감정을 무조건 나쁘게 보거나 섣불리 털어내도록 강요하는 건 더 악수를 두는 일이다. 미움도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사랑이 돌봄이듯, 미움도 돌봐야할 감정이다. 긁어서 덧나지 않게 미움을 잠재우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내가 꼴도 보기 싫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상대에게 알려주고 확인시켜주는 과정을 밟아야 치유된다. 그 과정에서 꼴도 보기 싫다고 말한 이유가 무엇인지 드러나야 하고, 관계 속에 내재된 다양한 감정과 사건들에 대해서도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상처받기 쉬운 취약한 각자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고 마음을 터놓을 때 미움의 쓴뿌리가 제거된다.

모든 부딪침과 마주침은 맥락 없이 형성되지 않기에 관계의 어려움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으로 해석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 아무리 미워해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는다. 그림책이 종점으로 다가가고 상처가 낫느라 근질근질하던 곳에 딱지가 앉을 때쯤일까? ‘너도 지금 나를 미워하고 있을까?’라는 단단한 질문이 솟구친다. 누군가를 미워했다가 미워하지 않기로 하기 까지는 참 많은 자책과 원망의 주름들이 꼬깃꼬깃 접혀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주름 잡힌 것들을 보면 짠해진다. 우연히 TV 프로그램에서 나문희 배우가 부른 ‘나의 옛날 이야기’를 보았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도 울컥해서 눈물을 훔치고 나도 그랬다. 특별히 노래를 잘 해서는 아니다. 주름진 얼굴, 구부정한 몸이 무대에 올라왔을 때부터 나도 그렇고 수많은 당신들도 그랬을 겹겹의 주름들 속에 감춰진 일들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내가 꼴보기 싫다던 너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는 결심까지 참 많은 주름들이 잡혀있을 테고, 그 주름을 통과한 후에 그림책 작가는 미움을 뒤로 하고 화가 난 얼굴이 아니라 등을 보이고 어딘가로 걸어가는 아이 모습을 표현했다. 감정의 몰입으로부터 벗어남은 시선과 관점의 전환으로 완성됨을 작가는 안다. 그림책 마지막 장에 이르면, 그림책 첫 장에서 빨갛게 상기된 채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라고 외치던 아이의 큰 얼굴은 왜소해져 있고 발목 쇠사슬 족쇄엔 반대로 미움의 대상인 아이 얼굴이 달려있다.

진실은 복수형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누구나 각각의 삶의 경험이 현재와 미래를 재현하고, 옮겨 다니는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끝까지 가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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