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아이가 없던 부부는 우연히 늪 근처에서 아기 보리스를 발견한다.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 부부는 너무 기뻐 보리스에게 물고기처럼 비늘이 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세월은 흘러 보리스는 다른 아이들처럼 잘 자랐고, 어느 날 보리스는 바람결에 잊고 있었던 늪의 냄새를 맡게 된다. 이후 보리스는 자신이 늪에 계속 머물렀다면 어땠을까? 이곳에서 사는 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일까? 고민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늪으로 가서 생활한다. 자신처럼 비늘이 있고 눈이 큰, 자신과 닮은 이들이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보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낀 이들이 자신과 먹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웃는 것도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새 가족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실의에 빠져 자기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며 그래서 가족을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며 늪 바닥을 정처 없이 걷던 보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섬광처럼 빛나는 수많은 병을 발견한다. 그 병 안에는 모두 이런 내용의 쪽지가 들어있었다. “네가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다면, 우리도 행복하단다.”

가족과 집에 대한 질문을 안겨주는 그림책『나도 가족일까?』이야기다.

살아가면서 ‘가족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지 한번쯤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가족은 따뜻함이나 안락함으로 연상되지만 최초의 상처, 억압의 원체험을 경험하는 곳이기도 해서 가족을 한 문장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요즘 주민등록 기준 1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가구 중 40%를 넘어섰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가족이 인간의 역사적 산물로 최후까지 남게 될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래도 가족 이데올로기나 가부장제의 해체는 있어도 가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서적 유대와 돌봄없이 삶은 지탱되기 어려우니까. 게다가 집의 의미가 곧 장소가 아니듯 단일 의미로 규정될 수 없는 가족은 앞으로 계속 새로운 형태로 확장되어 갈 수밖에 없다.

아무튼, ‘나도 가족일까’ 고민하는 보리스는 낯설지 않다. 부모와 다른 생김새로 촉발된 고민, 지금 이대로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는 일이 어디 보리스에게만 한정될까? 누구나 알 수 없는 곳에서 와서,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이방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그래서일까? 수많은 영웅담과 옛이야기는 떠남과 귀환의 서사를 편애한다. 집 떠나기 싫어하는 자는 강제로 집을 떠나게도 한다.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난 죄로 버려진 바리공주가 그렇고, 계모의 등에 떠밀려 집을 떠나야 했던 헨젤과 그레텔이 그렇고,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모두 집을 떠났다가 돌아와야 성장하는 법이다. 떠났다가 돌아온 자는 지혜로움을 얻는다. 농경사회에서 부모 말을 듣지 않은 아이들에게 “집을 나가라”고 하는 것은 가족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1차적인 의미가 있지만 더 깊은 속내는 집을 떠나 성장하고 돌아오라는 이중메시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전부 맞는 얘기는 아니지만 부모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은 내가 말을 듣지 않아도 나를 사랑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어서라는 말도 있다. 착한 아이의 억압이 가장 힘겨운 법이다. 보리스의 떠남과 방황이 건강해 보이는 이유다.

그림책을 여러 번 읽으며 나는 보리스 였다가, 보리스 엄마였다가 그네처럼 마음이 앞뒤로 흔들린다. “네가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다면, 우리도 행복하단다.” 라는 쪽지를 읽는 보리스 마음으로 벅차고, 어느 곳에서든, 무엇을 하든 보리스 행복을 바라는 엄마의 마음으로 간절하다.

명절을 앞두고 혹시 ‘나도 가족일까?’ 생각해보는, 내가 알고 있고 알지 못하는 모든 이에게 빈병 대신 지면을 통해 이런 쪽지 하나 써서 띄운다. 비늘이 있어도, 없어도 괜찮다. 늪에서 살아도, 집으로 돌아와도 좋다. 너만 행복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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