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세 기자
전철세 기자

‘숫눈길’이란 순수 우리말이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쌓인 길’이란 뜻이다.

지난해 계룡시의회 헌정 사상 최초로 예결위 간사인 최헌묵 의원이 예산안 심사 결과보고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유인즉 계룡시소상공인연합회 지원예산 3억여 원이 법과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최악의 겨울을 나고 있을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예산을 시민 대변자인 의원이 온몸으로 막아선 것이 이해되지 않아 속내가 자못 궁금했다.

자초지종을 확인하다보니 지난해 7월 태동한 계룡시 소상공인연합회 정체성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소상공인연합회 계룡시지부는 계룡 관내 50여 소상공인 업소의 추천을 받아 모 인터넷 언론사 사장을 회장으로, 부회장과 이사진은 모 어린이집 원장, 금융인(보험) 등으로 구성됐다고 한다. 더구나 이 연합회는 계룡시 소상공인들의 주류를 이루는 150여 업소의 계룡시 상인회나 300여 회원이 가입된 외식업계룡시지부의 공식참여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자꾸만 의문이 들어 소상공인연합회 회원업소 명부를 확인하고자 계룡시를 찾아 명단을 요청했지만 시는 소상공인연합회가 회원업소 명단을 가린 채 제출해 명부를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소상공인 회원업소가 무슨 기밀이라고 회원업소를 가리고 제출했을까 아이러니다. 이렇듯 시는 예산 편성의 가장 기본인 소상공인 업소 현황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묻지 마 예산을 시의회에 올린 것이다.

계룡시 소상공인연합회의 요청으로 시에서 편성한 올해 예산 3억 2,200만 원의 세부 사용처는 소상공인 공동물류창고 운영 3억 원(물류창고 임대료 2억 원, 복층 선반 및 CCTV 설치 5,000만 원, 물류창고 관리비 등 연간운영비 5,000만 원), 소상공인 업체 특성화 및 브랜드 강화 2,200만 원 등이었고, 의회 예결특위 심의 결과 2,500만 원이 삭감돼 최종 3억여 원이 편성됐다.

당장 임대료 내기도 버거운 계룡시 소상공인들에게 물류창고가 그리 필요했을까? 차라리 소상공인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임대료를 지원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업소 명조차 가린 이유 등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계룡시의회의 예결위 계수조정 과정을 비공개로 진행하다보니 이런 부분들이 심층 깊게 토의가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결국 최헌묵 의원만이 이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간사보고를 거부하면서까지 이를 지역사회에 알리려고 했을 것이다.

최근 이를 인지한 모 시민단체가 계룡시에 정보공개를 통해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나 시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또다시 비공개 처리했고 급기야는 논란이 재확산 되며 조만간 감사원 감사를 요청해 소상공인 예산이 바로 쓰이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원은 표를 먹고 사는 존재라고 말하곤 한다. 그만큼 선거철을 목전에 두고 상정되는 예산은 쉽사리 삭감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 예산을 반대한 것은 지역 소상공인을 위해 제대로 썼으면 하는 바람이고 용기라고 여겨진다. 의원으로서 당연한 일인데도 용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를 방관했을 조력자들이 떠올려지기 때문일까? 소상공인연합회 회원업소 명부조차 가린 채 상정된 묻지 마 식 예산안이 의회 문턱을 넘어 논란의 장으로 나오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서산대사의 선시(禪詩) 한 구절이 떠올랐다.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기는 이 발자국은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되리니.”

숫눈길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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