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혼자 보기 아까운 책이다 싶으면 주변에 널리 알리길 좋아한다. 일찍이 훌륭한 작가보다 훌륭한 독자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고, 좋은 건 혼자보기보다 같이 읽고 싶고, 나누고 싶다.

올 가을에 출간된 어른을 위한 그림책 『왜 우니?』가 그런 책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왜 우냐고 물어보면 대답하는 형식인데 공감 백퍼센트 대답들로 책 한권이 꽉 채워졌다. “엄마가 점점 작아져서 사라져 버릴까봐 울고, 내가 너무 못한 것 같은데 해님이 환하게 웃으며 수고했다 해줘서 고마워 울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해서 내가 미워 울고, 안 울고 싶었는데 옆에서 울어서 따라 울어”라는 대답들이 어쩜 모두 내 얘기 같은지.

좋은 책을 소개하는 사람 일순위인 큰딸에게 『왜 우니?』에 실린 내용 몇 컷을 사진 찍어 보냈더니 감동이라면서 또 슬프다고 한다. “좋은 데 왜 울어?”라고 물으면 항상 큰딸은 ‘감동하다’와 ‘슬프다’를 연결하는데, 감동적일 때 눈물이 나오니까 눈물을 슬픔으로 동일시하고 있지 않나 싶다. 실은 감동뿐 아니라 모든 감정은 자기 안에 없는 것을 느낄 수 없으니, 눈물은 슬픔의 짝이 아니라 연민의 꽃이다. 세상이 그나마 살만한 이유도 사람들이 연민에 기대어 살기 때문이지 않을까.

파커J파머는 사람들이 침묵과 웃음을 자주 나눌수록 신뢰가 깊어진다고 했는데, 난 여기에 연민을 추가하고 싶다. 사람이 온다는 것,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을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라던 정현종 시인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누군가를 이해하고 관계가 깊어지는데 침묵과 웃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만약 시소처럼 삶의 양쪽에 침묵과 웃음을 위치시킨다면 시소 중심에는 묵직한 연민을 올려놓고 싶다.

2021년 내 삶의 중심에 놓인 연민의 일기장을 들춰본다. 입대 한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가 그동안 더 잘 해주지 못해서, 주름이 깊어진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장시간 혼자 집에 머물며 가족을 기다리는 반려견을 생각하며, 학교 폭력의 가해자인 줄 알았는데 애초에는 폭력의 피해자였음을 알았을 때, 자식의 잘못으로 용서를 구하는 부모의 눈빛에서, 아동학대로 집을 나왔다는 학생의 처지를 알고서, 가지가 전부 잘려 뭉뚝해진 나무를 바라보며, 운전을 하다가 큰 트럭에 폐지처럼 실려 가는 엄청난 닭의 무리를 보았을 때, 뒤늦게 찾아간 팽목항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을 보면서, 회초리를 찾지 못해 대신 자신에게 던질 돌멩이를 가져왔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눈물을 터뜨리며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항상 기억하기 위해 선반 위에 돌멩이를 올려두었다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 무시로 깊이 연결되던 연민의 마음이 일기장에 길게 늘어서 있다.

그림책 『왜 우니?』 마지막 페이지에도 왜 우는지 대답한 모든 사람들이 앉거나 선 자세로 길게 이어져 있다. 릴레이로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고 인형, 우산, 꽃 등을 건네면서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 각각의 눈물이 서로의 눈물로 전환되지 않았다면 이 책은 그저 슬픈 그림책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왜 우니?』는 코끝이 찡하다가, 웃음이 나다가, 조용히 책을 덮고 누군가를 생각하게 되어서 좋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노부부로 보이는 두 노인이 부둥켜안고 있다가 서로를 바라보며 “하루하루가 덧없고 귀해서 울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다. 노부부의 모습과 대답에서 두 개의 메시지를 얻었다. 덧없음도 귀함도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만 참이라는 것, 그리고 2021년 덧없고 귀한 날들이 진짜 며칠 안 남았다는 것을!

 
저작권자 © 계룡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