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마음을 열거나 닫는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열거나 닫을 수 있다는 비유는 참 탁월하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 마음을 하루에도 몇 번씩 열고 닫는다. 때로는 자동문처럼 열리고 닫히는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해 좌불안석일 때도 있다.

‘마음’에 대해 골몰할수록 하나의 사물을 계속 바라보면, 그 사물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는 것처럼 마음의 경계는 더 넓고 깊어진다. 수많은 감정, 생각, 기억, 경험의 조각들이 머무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오래전부터 내 관심 영역이다. 마음에 대한 관심은 유일한 자산인 마음을 경영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시작된 것일까? 마음의 습관, 마음의 태도, 마음의 향방,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들여다보며 이리저리 조각을 맞추듯 지내는 일은 고되고 새롭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문을 열려고 해도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자기 안에 있으니 스스로 열고 나오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는 힘과 권한을 부여받고, 지지받는 경험이 쌓여야 마음의 문을 가볍게 열거나 닫기를 반복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에는 질병을 이해의 결핍에서 생긴다고 생각하는 전통적인 라다크 의서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경증 환자의 두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늘 말이 없고 겁을 먹고 있는 사람의 경우고, 다른 하나는 말이 너무 많고 몹시 공격적이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방을 나가곤 하는 사람의 경우”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례 치료법이 같다는 것인데, 그 치료법은 환자를 친구와 집에 함께 가두고, 친구가 환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정한 말을 해주는 것이 전부다.

“전학 가고 싶어요. 여기 있는 친구들과 마음이 맞지 않으니, 다른 학교로 가면 저와 맞는 친구들이 있겠죠.” “상대방이 먼저 욕을 했으니까 화가 나서 때린 거죠.” “만나서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갈등 현장에서 만난 자조와 회피, 분노 감정에 휩싸인 청소년들의 마음을 어디서부터 보듬어 주어야 할까? 라다크 치료법처럼 친구와 이야기 나누고 다정한 말을 듣는 것만으로 치유되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라다크 의서에 나온 방법으로 내가 소년의 친구가 되어 친구 집에 함께 머물게 된다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분노 감정을 들여다보면 내가 너무 작아져 있다. 나를 비난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나를 판단할 전권을 주지 말자. 타인의 잘못된 행동이 내 행동을 결정하도록 끌려다니지도 말고, 타인의 칭찬이나 동의를 갈구하지도 말자. 모든 감정은 외부 상황이나 타인으로부터 자극받을 수 있지만 그 감정의 원인이 모두 밖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내 감정의 책임을 밖에 두면 둘수록, 나는 늘 타인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누구나 상처받지만 누구나 도망가거나 복수하려 들지 않는다. 내 마음이 원하는 소리를 깊이 듣는 연습을 하자. 침묵이 없는 언어는 소음에 불과하듯, 조용히 내 마음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듣는 연습을 하자.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천천히 마음 안을 걸어보자. 나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말을 걸어보자.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다음 마음의 손잡이를 돌려 문을 활짝 열고 나가자. “본래 나는 내 두 다리로 걸었던 사람이다. 그것만 잊지 않으면 지옥을 빠져나간다.”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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