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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가을이 오면최영민(논산계룡교육청 학폭심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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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8.31  15: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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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민(논산계룡교육청 학폭심의위원장)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때로는 차갑게 느껴지는 바람이 창을 마주한 내 책상 위로 날아든다. 언제 물러가나 싶었던 뜨거운 여름은 가고, 가을 냄새가 진동한다. 모든 존재는 영원하지도 순간적이지도 않다는 배움의 정석은 계절의 변화로부터 온다.

더위에 무뎌졌던 감성도 기온이 내려가니 시를 읽기 딱 좋다.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시집을 펼쳐 시 한 편 읽기 좋은 계절이다.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시 중에 으뜸은 윤동주의 <쉽게 씌여진 시>다. 스물아홉 되던 해 세상을 떠난 후, 1946년 가을 유작으로 발표된 <쉽게 씌여진 시>는 왠지 나에겐 가을과 연결되어 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 데/ 시가 이렇게 쉽게 써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던 시인의 마음에 내 마음을 덧대보며,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돌이켜보게 된다.

윤동주의 시로 알려졌지만 실제 시를 쓴 이는 뇌성마비 장애인 김준엽 시인이라고 밝혀진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란 시도 생각난다. 윤동주가 이 시를 썼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후쿠오카 감옥에서 고통 속에 생을 마감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직면한 윤동주 시인과 이 시를 연결하면 가 닿지 못한 ‘인생의 가을’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스스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열심히 살았고,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었을 때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을 읽을 때면, ‘인생의 가을’을 허투루 보내지 말자 생각하며 등을 곧추 세우게 된다.

윤동주와 달리 가을이 온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마음을 그림으로 그린 안중식의 <성재수간도 聲在樹間圖>는 내게 또 다른 느낌의 가을이다. 그림이 좋아 자주 찾아보는데 그림을 볼 때마다, 바람 부는 가을밤에 방을 나와 마당에서 사립문을 바라보고 서 있는 동자의 위치에 마치 내가 서있는 듯 느껴진다. 이 그림은 구양수의 글 <가을의 소리>를 표현한 그림이라는데 구양수가 책을 읽다가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동자에게 무슨 소리인지 나가보라고 하고, 동자가 밖으로 나와 보니 아무도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난다’고 말한다는 내용의 글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라 한다. 구양수의 글에는 동자가 밖을 살핀 후 “달과 별이 환히 빛나고, 은하수는 하늘에 걸렸습니다. 사방에 사람 소리도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이어서 동자의 이야기 들은 구양수는 ‘어이하여 가을이 벌써 왔는가’ 하며 슬퍼하는데 여기서 가을은 나이 듦에 대한 소회다. 그러나 구양수의 글과 다르게 안중식의 그림을 보면 방 안에 앉아 있는 구양수의 슬픔보다 바람에 날리는 댓잎과 동자의 옷깃을 들추는 바람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안중식의 그림이 포착한 장면은 나이듦이 아니라 가을의 자화상 같다.

한편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윤동주의 <자화상>과 “달과 별이 환히 빛나고, 은하수는 하늘에 걸렸습니다”라고 말하는 동자의 어법이 800년을 훌쩍 뛰어넘어 가을 하나로 연결되고 조우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기쁘고 신나는 일이다.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베리는 “삶이란 겸손을 배우는 길고 긴 수업”이라고 했다. 여러 인연의 마주침으로 발생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소멸을 준비하는 가을,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오늘은 시 한편 공책에 옮겨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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