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21세기 기술혁신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고, 점점 고용정책도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특히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고용의 기회는 더 협소해졌고, 응급처방으로 쥐어주는 지원금도 한시적 공공부조에 불과할 뿐이다. 주식과 부동산 경제는 호황이든 불황이든 이에 따른 정당한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한 조세저항은 크기 마련이고, 갈수록 커져만 가는 부익부 빈익빈, 어떻게 하면 이러한 불평등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모모」의 작가 엔데의 관점에서 화폐 시스템과 대안경제를 이야기하는 책 「엔데의 유언」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1차 대전 후 바이에른에 살던 실비오 게젤은 ‘돈은 노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깜짝 놀랄만한 말을 했다.

돈으로 산 것은 감자든 옷이든 먹고 낡아서 다 소비되고 사라지는데 그 구입에 사용된 돈은 없어지지 않는다면서 물건에 불과한 돈이 소비되는 물자들과 부당한 경쟁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게젤은 돈도 사용되다가 끝에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젤의 이론을 실천하여 성공한 사례도 있다. 1932년 오스트리아 도시 뵈르글은 인구가 5,000명이 안 되었다. 이 도시에는 400명에 이르는 실업자와 많은 부채가 있었고, 당시 뵈르글 시장이었던 운터구겐베르거는 현행 화폐 이외에 노화하는 화폐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매월 1퍼센트씩 화폐 가치가 감소하도록 고안되었고, 뵈르글 시민들은 매월 1퍼센트씩 스템프를 사서 노화하는 돈에 첨부해야 했다. 그러니까 이 돈은 가지고 있으면 불어나는 게 아니라 감가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것을 즉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2년 후 뵈그글 도시에서는 실업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돈을 빌려도 이자를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모두가 돈을 빌려서 일을 했고, 시의 부채도 사라졌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국가는 지폐발행은 국가의 독점적 권리라고 주장하면서 노화하던 돈을 금지시켰다.

만약 우리가 쓰는 돈도 유통기한이 있거나 노화하는 시스템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젊은 날 아주 짧게 시골생활을 했었다. 여름이면 동네 어르신들이 상추를 많이 가져다 주셨다. 왜 아무 이유 없이 상추를 많이 가져다 주셨을까?

시골인심이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매일 먹어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상추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만약 화폐가 집안에 많았다면? 아마 상할 염려가 없으니 상추처럼 나눠 주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쌓아 두면 이익이 되고 상품으로 유통되는 화폐를 포기하고, 노화하는 화폐 시스템을 선택한다면? 시간과 함께 가치가 감소되는 화폐 사용은 경쟁이 아닌 호혜와 상생의 사회를 도래시킬까?

돈이 노화하는 유쾌한 사회를 상상해 본다. 이런 시스템이 작동되려면 개인자산이 불안정해지니까 기본소득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돈의 축척으로 얻어지는 실익이 사라진 사회는 소비와 향락의 사회가 되는 건 아닐까? 화폐가치가 하락하니까 다시 대안화폐로서 금이 각광받는 사회가 오려나? 참신한 정책을 입안하고 제도를 마련해서 매뉴얼대로 진행하면 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작금의 현실이 증명하고 있으니까, 그럼 돌고돌아 시스템을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이 어떻게 돈을 인식하고 활용할 것인가 하는 사람의 문제로 귀착되나?

‘돈은 노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장 하나로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펴는 늦은 밤,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해서 없는 길은 아니지.’ 생각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어떤 상상을 하는지 밤공기를 타고 와룡선생들의 와글와글, 개굴개굴 소리가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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