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문 시인

선인들은 교육 지표(指標)로 군자(君子)다운 선비가 되는 것이었다.

유교(儒敎)는 공자(孔子)의 도의사상(道義思想)을 근본으로 하는 인류애(人類愛)이며 인본주의(人本主義)적 학문 체계이다.

유교가 실현하고자 하는 진리 구현의 기본 이상(理想)으로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至於至善)의 삼강령과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재가(在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팔조목을 통해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목표를 이루려 했다.

조선의 정치는 덕치(德治)를 표방했고 예치(禮治)에 의한 왕도정치의 이상적 원리를 유교 경전에서 찾았다.

경전의 사서(四書)는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과 오경(五經)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예기(禮記) 춘추(春秋)였다.

사서삼경을 통해서 내적 수양을 바탕으로 외적 덕화를 달성해 가는 것이 유교 이론이자 이상이라 할 수 있다.

하늘에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천도(天道)가 있고 천도가 행한 바에 의하여 사람에게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인성이 있다는 논리가 유교의론의 핵심 가치이다.

인성이 유일정순(惟一精純)하여 지천명(知天命)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인성(人性)은 천도와 합일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유교는 인성 교육을 가장 중요시했고 그 방법으로는 학문(學文)과 사변(思辨)을 강조하였다.

유교는 인(仁)으로써 모든 도덕적 삶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학문을 꽃피웠다.

사람이 살았을 때는 살아 있는 대로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는 것이고 죽어서 가는 길에도

서로의 인의예지가 있다고 했다.

선비는 효제충신을 바탕으로 하여 생활에서 실천도덕을 이념으로 하여 공맹(孔孟)의 가르침에 의한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유교 윤리에서 세 가지 기본강령과 다섯 가지 실천적 강목이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의자강(夫爲婦綱) 부위부강(父爲子綱)이며 오륜(五倫)은 부자유친 (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다.

유교는 여러 학파로 나뉘어 졌지만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자(子思子)에 이어 맹자(孟子)에게 전수된 학파를 정통 학파라 한다.

자사자(子思子)는 천명설(天命說)을 주창하였고 맹자는 성선설(性善說)로 유교 이론을 정립하였다.

주자(周子) 장자(長子) 정자(程子)를 거쳐 주자(朱子)에 이르러 성리학(性理學)으로 발전하여 인심(人心) 도심(道心)과 사단(四端) 칠정(七情)의 철학적 경지를 이룩하였다.

우리나라의 성리학은 고려말 안향(安珦)이 중국 연경에서 주자의 저술을 필사하여 고려에 돌아와 전파한 것이 성리학의 시초다.

조선왕조 중엽에 이르러서 퇴계 이황의 주기론(主氣論)과 율곡 이이의 주리론(主理論)이 발전하여 조선 성리학의 토대를 닦았으며,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辯) 예송논쟁(禮訟論爭) 인물성동논변(人物性同論辨)을 거치면서 성리학은 최고의 절정에 이르렀다.

도덕 이론의 출발점을 한 개인의 도덕적 자각 실현에 두고 자신의 한 몸이 바르면 천하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돌아온다고 믿었다.

유학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국가의 윤리(倫理)를 선도해 왔으며 사상의 주축을 이루었고 도덕의 연원(淵源)이 되어 민족애의 주된 정신인 선비정신으로 이어졌다.

21세기 젊은 신지식인들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 선비와 교만과 독선 무능으로 나라를 망친 선비를 생각했다.

조선후기 조정의 위정자와 사대부는 마치 갈라파고스의 거북 증후군처럼 퇴화하면서 주자학 안에 자기를 가두었다.

유림 사대부들은 안짱다리 위·왜(矮·倭)의 난학(蘭學)을 거부하면서 세계조류에서 밀려나는 우를 범했다. 시대를 읽지 못한 결과는 망국(亡國)으로 이어졌다.

허나 유교 사상은 인류애(人類愛)였다.

인간사에서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원칙은 부모를 공경하고 봉양하는 것이다.

선비정신은 우리 민족의 주된 정신이다. 전통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삶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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