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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두 죽음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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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13  16:5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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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세 기자

최근 박원순, 백선엽 두 인사가 세상을 떠났다. 한 분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고, 또 한 분은 백세까지 천수를 누리다가 타계했다.

특히 이들이 걸어온 삶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이어서 죽음 앞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듯 또 하나의 삶의 흔적들이 새로이 조명되고 있다.

박원순 前 서울시장은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사생활을 잠시하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자신이 살던 집까지 처분하며 인권운동에 앞장서왔고, 이후 정계에 입문해 최초로 3선 서울시장이 됐다.

그런 그가 스스로의 삶을 마감한 이유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갈수록 논란의 중심인 비서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비록 그가 스스로의 죽음으로 공소권 없음이라는 법적 무죄 처분을 받았지만, 생전에 자신이 풀었어야 할 숙제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진실은 죽음보다 더 엄히 거짓과 불의를 심판한다. 완전 범죄는 없다 하지 않는가? 성추행 의혹 사실여부는 자신이 알고, 비서가 알고, 하늘이 알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또 그는 7억여 원이라는 빚을 가족들에게 남겼다. 적어도 작금의 정치권처럼 돈과 권력, 명예를 모두 가지려는 욕심은 없었던 것 같다. 생전에 작성한 유언장에는 “모든 분들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 달라. 모두 안녕.”이라고 적었다.

아울러 그는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 계룡시에도 ‘참여연대’라는 명칭을 갖고 있는 시민단체 두 곳이 있다. 이들은 계룡의 이슈메이커일 정도로 정치적인, 너무나도 정치적인 것들에 관여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 죽음을 계기로 시민 일각에서는 뒤늦게 이들의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박원순 前 시장이 참여해 만든 참여연대는 “故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장 이전에 오랜 시간 시민운동을 개척하고 그 영역을 확장시켰던 활동가였다. 참여연대 운동의 토대를 굳건히 세우고 다양한 시민운동 영역에서 한국사회의 개혁과 혁신을 위해 헌신했다. 참여연대는 고인과 함께 한 시간을 기억하겠다”는 애도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계룡시에 있는 참여연대라는 두 단체는 여전히 백선엽 장군 조문 안내와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만을 부풀리고 있다. 아이러니한 계룡시 참여연대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 당시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1사단을 이끌고 북한군을 물리친 전쟁 영웅으로 대한민국 창군 이래 최초의 4성 장군이 된 군 역사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북한군의 총공세에 밀려 다부동이 위급해 지자 직접 권총을 들고 선봉에 서서 “그동안 잘 싸워주어 고맙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더 후퇴할 장소가 없다. 더 밀리면 곧 망국이다. 우리가 더 갈 곳은 바다밖에 없다. 저 미군을 보라. 미군은 우리를 믿고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후퇴하다니 무슨 꼴이냐. 대한 남아로서 다시 싸우자. 내가 선두에 서서 돌격하겠다. 내가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며 끝까지 북한군과 싸워 승리한 일화가 전해진다. 하지만 그도 죽어서는 국립묘지 안장 여부를 두고 친일 논란의 단초를 스스로 제공하고 말았다. 백선엽은 봉천 군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장교가 됐고, 독립군 토벌로 정평이 나있는 악랄하기 그지없던 간도 특설대에 근무한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근현대사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던 것은 박정희와의 인연이 큰 계기가 됐다. 그는 해방 이후 당시 남로당원이었던 박정희가 체포돼 사형 위기에 처하자 그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백선엽 장군을 생명의 은인으로 대우하며, 사석에선 백 장군이 세 살 아래인데도 불구하고 ‘형’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후 그는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2회), 교통부장관, 각국 대사 등을 역임하며 수천 억 원대의 재산가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그는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일왕에 충성을 맹세하고 독립군을 잡으러 다녔지만, 살아생전에는 6.25전쟁 영웅이 되어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여생을 살았던 것이다. 어쩌면 백선엽 장군은 대한민국에서는 독립운동을 하면 왜 3대가 망했어야 했는지를 자신의 죽음으로 대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 죽음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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