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용하 (예)육군대령

우용하 (예)육군대령
우용하 (예)육군대령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괴군의 기습 남침을 시작으로 3년간의 동족상잔으로 조국 강토는 폐허가 되고 수많은 사상자와 전쟁미망인·전쟁고아를 남겼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이날을 잊지 않기 위해 해마다 기념식이 베풀어졌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어린 나이에 주먹을 불끈 쥐고 6.25 노래를 힘차게 불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그러나 70년이 지난 현실은 어떠한가? 일부에서 6.25 전쟁을 미군이 일으킨 북침이라 주장하는가 하면 정부에서 주관하던 기념식조차 아예 없어졌다.

해마다 6월이면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춰 자주 부르던 625 노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금지곡이 되었고 가사도 개사하였다가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6.25 전사(戰史)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경상북도 칠곡군 다부동”에서 있었던 ‘다부동 전투’가 꼽힌다.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을 개시한 북괴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8월 1일 진주-김천-점촌-안동-영덕까지 진출하였다. 김일성은 7월 20일 수안보까지 내려와 8월 15일까지 부산을 반드시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리며 전투를 독려하였다.

우리 국군은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어 낙동강 방어선을 최후의 보루로 선정하였다. 북괴군은 대구를 조기에 점령하고 부산으로 진격하기 위해 3개 사단을 다부동 축선에 투입하였다. 이때 방어는 국군 제1사단(사단장 준장 백선엽)이 담당하였다. 백선엽 사단장은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고 하면서 전 장병은 현 진지에서 옥쇄(玉碎:깨끗한 죽음)를 각오하라며 전장을 진두지휘하였다. 북괴군의 집요한 공격에 백척간두의 위기를 몇 번 맞기도 하였으나 끝까지 대구 북방을 사수하였다. 만약 다부동 방어선이 무너졌다면 대구가 점령되고 바로 부산까지 점령당하여 자유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우린 지금 공산 치하에 있을 것이다.

‘다부동 전투’의 승리는 미 제8군의 반격 발판을 제공하였고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한 시간을 제공하였으며 이어 서울 수복을 거쳐 평양 탈환, 압록강까지의 북진의 길을 열었다는 게 역사적 평가다.

현역 때나 지금이나 전사 연구에 흥미를 가진 필자는 “백선엽의 6.25 전쟁 징비록”을 감명 깊게 읽었으며 백선엽 장군에게 인사드릴 기회도 있었다. 다부동 전투는 주로 야간전투를 하였으며 밤새도록 전투를 하다가 날이 밝으면 낙동강 물이 피로 붉게 물들었고 강변과 계곡에는 시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좁은 전투 정면에서 26일간 피·아 34,000여 명이 전사하면서 피비린내가 진동하였으며 미처 시체를 처리하지 못해 여름철이라 시체 썩는 냄새로 숨을 쉴 수 없었다는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최근에 가슴 아픈 기사를 접하였다. 백선엽 장군이 작고하시면 친일파 경력이 있어 서울 국립묘지에 안장을 못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의원이 ”친일파 파묘(破墓:무덤을 파냄)“ 이슈를 꺼내자 같은 당 김홍걸 의원은 페이스북에 “친일파 군인들의 죄상은 전쟁 때 세운 전공만으로는 용서받을 수 없다”며 앞장서고 있다. 또한 대전현충원 앞에는 “친일 반민족 묘를 대전현충원 밖으로 당장 이장하라“는 현수막이 지금 걸려 있다. 현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 국가관과 애국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김홍걸 의원은 누구인가? 특별한 직업도 없이 지내다가 아버지 후광으로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최근에는 형제 간 재산 싸움으로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고 지탄받는 사람이 어떻게 전쟁영웅을 폄하할 수 있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백선엽 장군은 다부동 전투의 승리와 평양을 선두에서 입성한 6.25 전쟁의 일등공신이며 호국의 영웅으로 미군들도 전쟁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는 분이다. 1920년 생으로 올해 101세이며 지난 1월부터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6.25 전쟁영웅을 친일파로 몰아붙이며 현충원으로 ‘간다, 못 간다’는 논쟁 자체가 매우 슬픈 일이다. 현충원에 자리가 부족하면 만들어서라도 모셔야 하는 것이 국가보훈처의 기본 임무이다.

우리는 반드시 625전쟁의 영웅을 기억하고 존중해야 하며 여생을 편히 지내시다가 원하시는 곳에 모시는 것이 국가가 할 책무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계룡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