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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맞아 재조명되는 계룡지역 독립운동사광복단결사대 결성한 한훈‧양기하 등 50여 명 애국지사 배출… 전국 面단위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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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7  18: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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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단결사대 결성한 한훈‧양기하 등 50여 명 애국지사 배출… 전국 面단위 최고

동흥의숙(東興義塾) 등 신도안 일대 독립운동 사적지 발굴 기념관 건립 보존계승

“本團은 正義의 死로서 祖國의 光復을 期한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계룡지역 독립운동사를 돌아보면서 알게 된 대한광복단 강령이다.

이 같은 기개(氣槪)로 조국 광복을 기원했던 대한광복단과 광복단결사대를 결성한 애국지사가 바로 신도안면 정장리 출신 한훈 선생이다. 또 국권이 침탈되자 군수 직을 내던지고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장렬히 전사한 두마면 출신 양기하 장군, 두계 장터에서 4월 1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입암리 배영직 선생 등 당시 전국 면(面)단위로는 최고로 많은 50여 명의 우국충신들이 탄생한 곳이 바로 계룡지역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방수도라고 자부하는 계룡시에 살면서도 계룡지역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에 본지는 3.1절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광복단결사대를 결성한 한훈 선생 등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던 계룡지역 독립 운동가들을 재조명, 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겨 본다. [편집자 주]

▲김광옥 등 의병 참여·군자금 모집…항일운동 근거지 된 두마면 송종빈가(宋鍾斌家)

충남대 충청문화연구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연구소, 대한광복단 기념사업회 등의 기록에 따르면 계룡 출신으로 구한말 의병전쟁에 참여한 이는 김광옥(金光玉, 두마면 왕치) · 홍순봉(洪順奉:두마면 막은동) · 김운서(金雲瑞:두마면 두계리) 등으로 김광옥, 홍순봉은 염기중 의병부대, 김운서는 이석용 의병부대에 각각 소속돼 군자금 모집 등 항일운동을 벌이다 김광옥과 홍순봉은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또, 정인행(鄭寅行) · 권충락(權忠洛) · 송종빈(宋鍾斌) 등도 군자금 모금 활동에 참여했다. 정인행은 두마면 용동리 출신으로 광복단 충청도지단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에 참여했다.

권충락은 두마면 석계리 출신으로 1919년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인 흥업단의 자금모금에 참여하던 중 1922년 5월 체포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년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권충락은 1943년 3월 9일 대구의 결혼 피로연장에서 일제의 가마니 강제 공출을 비난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죄목으로 또다시 체포돼 1943년 5월 14일 소위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6개월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송종빈은 두마면 향한리 출신으로 조선독립단에 참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했다. 조선독립단은 부적면 출신인 이내수가 조직한 비밀결사단체로, 이내수는 일제 은사금을 거부하고 자결 순국한 이학순의 아들이다. 이내수는 조선독립을 위해 1910년 5월경 논산군 두마면 향한리 송종빈 집 거실을 근거지로 해 자금 조달 모의를 했는데, 주목되는 점은 송종빈 집이 조선독립단의 근거지였다는 점이다. 송종빈 집에서 단원들은 1919년부터 조선독립 격고문, 군자금 수령증 등을 만들었다. 송종빈은 조선독립단에 참여해 단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지원활동을 벌였으며, 1921년 10월 경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이다 체포돼 징역 3년의 옥살이를 했다.

   
 

▲계룡시, 국내·외 비밀결사에 참여한 한훈‧양기하 선양운동 추진

-광복단 결사대 조직한 한훈…신도안에 기념관 건립 착수

계룡을 대표하는 애국지사가 바로 한훈(韓焄) 선생이다. 한훈 선생은 1906년 17세 때 홍주의병에 참여한 이후 항일투쟁에 나서 1913년 채기중 등과 함께 대한광복단을 조직하고 일본 헌병대 등을 습격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숱한 옥고를 반복하며 1941년 병으로 출소했다. 출소 후 신도안에 서당을 차려 후학 양성에 앞장섰으며 해방 후엔 광복단을 재건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한훈 선생은 1920년 2월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에게 광복단결사대 계획을 논의한 뒤 같은 해 3월 귀국해 박문용 등과 함께 광복단결사대를 조직했다. 광복단결사대는 조선총독 및 친일관리들의 처단과 자금모집을 목표로 정하고 활동을 시작해 1920년 8월 김상옥의 암살단과 연합, 1920년 8월 미국 의원단 방한 시 남대문 역에서 폭탄을 던지고 총격전을 벌여 환영 나온 조선총독 및 정무총감 등을 처단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미 의원단이 도착하기 하루 전인 8월 23일 일제의 예비 검속으로 한훈을 비롯한 단원들이 체포되면서 조직이 와해됐다.

한편, 계룡시 신도안면 정장리 일원은 1920년 결성한 광복단 결사대 발원지가 됐고, 시는 이 일대에 광복단결사대 기념탑을 세우고 해마다 애국선열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 국외독립운동 참여, 무장투쟁 펼친 양기하 장군

양기하 장군은 1878년 두마면에서 태어나 구한말 공주군수를 역임했으나,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자 군수 직을 내던지고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남만주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에 가입해 교통부장을 맡아 활동했고, 1920년에는 광복군사령부 선전부장, 정보국장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1922년에는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 발기총회에 참여해 기초위원에 선임됐으며, 1930년 전후에는 조선혁명당에 참여해 혁명군을 조직한 후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후 1931년 혁명당 간부의 정치부장으로 선출됐는데, 이 때 일본 경찰의 습격을 받고 피신해 1932년 관전현에서 주둔하던 중 일본과 만주 군경대의 습격을 받아 독립군 23명과 함께 전투를 벌이다 전사했다. 이후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1995년 6월 양기하의 유해를 중국 요령성에서 봉환해 동작동 국립묘지 임정요인 묘역에 안장했다. 이외에도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계룡인은 무정부주의 운동을 벌인 입암리 출신 이을규·이정규 형제가 있다. 이들 형제는 1924년 북경에서 재중국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해, 정의공보 등을 발행하며 무정부주의 선전활동을 벌였고, 북경에서 노동대학 설립에도 참여했다.

   
 

▲동흥의숙(東興義塾) 등 독립운동 사적지 발굴…항일투쟁사 보존·계승 노력

일제 강점기 망국의 울분을 달래지 못한 계룡에 거주하는 12명의 주민들은 동용추 석벽 위에 자신들의 호와 이름을 전부 새겨 넣으며 ‘일본의 백성이 아니다’는 뜻의, ‘용산12일민회((龍山十二逸民會)’를 만들어 일본의 창씨개명 반대 운동과, 동흥의숙(東興義塾)이란 서당을 차려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독립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 12인은 소창 김완수, 형당 이유철, 송은 이일우, 감파 최정하, 성제 유화준, 초운 이건재, 담암 민용식, 당제 정민조, 석정 안종순, 지산 황기수, 혜운 김제순 등이다.

이들 외에도 신도안에 은거했던 예안 출신 이명우는 1919년 고종이 독살됐다는 소식에 통곡하며, “내가 한 번 죽어 국가에 보답하고자 했으나 노모가 계셔 결행하지 못했는데 이제 노모가 가시고 임금마저 안 계시니 어찌 죽지 않으리오”라며 음독 자결한다. 이를 안 그의 부인도 남은 독약을 마시고 남편을 따라갔다는 ‘의부열부(義夫烈婦)’의 일화도 전해진다. 또한 삼신당을 건립하고 독립지사들을 은신 시키고, 병을 치료해 주던 정원강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거쳐 간 곳이 바로 이곳 계룡지역이다. 이들 애국지사들을 기리기 위해 시는 계룡대와 협조해 국방부 소유인 신도안면 정장리 일원의 한훈 선생의 거주지를 매입해 오는 2020년 까지 한훈 기념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또 서장환 선생이 설립해 후학 양성과 구국 활동을 전개한 동흥의숙 터 등 독립운동 사적지를 발굴하고 발굴 현장에 표지판을 세우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울러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1919년 4월 1일 계룡시 두계장터에서 입암리 배영직 선생 주도의 독립만세운동 뜻을 기리기 위해, 오는 4월 1일 용남고 전 학년 학생을 비롯해, 계룡고·계룡중·두마초 학생들과 각계각층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범시민 행사를 펼칠 계획이다.

최홍묵 시장은 “2020세계군문화엑스포를 앞두고 한훈 기념관이 건립되면 국방수도에 걸맞게 계룡시의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한 번에 알아 볼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나라사랑, 국방 중심도시 계룡의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평가 받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던 유서 깊은 계룡 관내 독립운동 사적지를 복원해 호국정신 문화의 중심도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철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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