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 / 아동문학가(시인)

지난 1월 26일 오전 7시 32분경 경남 밀양의 세종병원 화재로 39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넘는 환자가 다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세간에는 제천화재 참사(29명 사망, 40명 부상) 이후 불과 한 달 여 만에 또다시 대형 화재 사고가 발생한 것이어서 다중시설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세종병원 화재사고로 숨진 피해자들 가운데 간호사 두 명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명은 돌보지 않고 오직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병실을 오가다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생존 환자 양 모 씨는 지금도 새까만 가래가 나오고 눈만 감으면 사고가 생각난다고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떠올리면서 “숨진 간호사들이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대피하라’고 내내 소리치다 정작 자신의 입은 가리지는 못했어요, 같이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나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고 울먹였다.

이 기사를 접한 필자에게 세월호 침몰 당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학생들은 내버려둔 채 자신들만 살기 위해 도망쳤던 선원들과 이번 세종병원 화재사고 때 자신들의 목숨은 아랑곳 않고 환자를 구출하다 최후를 맞은 간호사들의 모습이 자꾸만 오버랩(overlap)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지금부터 꼭 10년 전 일이다. 2008년 2월 19일 저녁, 육군 204 항공대대 소속 UH-1H 헬기에 일곱 명의 군인들이 탑승했다. 이들은 뇌출혈을 일으킨 윤 모 상병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강원도 홍천 국군철정병원에서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후송 임무를 마치고 복귀 중에 있었다. 그러나 새벽 1시 40분쯤 국지적 기상 악화로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촌리 용문산 정상 부근에서 이들이 탑승한 헬기가 추락, 탑승자 전원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헬기에는 간호장교 한 명이 탑승해 있었는데 그가 故선효선 소령이다. 선 소령은 두 딸과 잠을 자다 당직근무가 아님에도 전우 대신 부랴부랴 운동복 차림으로 헬기에 동승, 환자 간호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간호학도들은 간호사가 되는 과정에서 나이팅게일 선서(Nightingale Pledge)를 한다. 나이팅게일 선서는 1893년에 만들어져 간호사로서 윤리와 간호원칙을 담은 내용이다. 그들은 임상실습을 나가기 직전 가관식(加冠式)과 함께 손에 촛불을 든 채 가운을 착용하고 선서식을 거행한다. 촛불은 나이팅게일의 간호정신을 이어받으며 주변을 비추는 봉사와 희생정신을 의미하고 가운은 이웃을 따뜻이 돌보는 간호정신을 상징한다.

이렇듯 희생정신이 누구보다 투철했던 간호장교 선효선 소령과 세종병원 화재로 고인이 된 간호사들은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다 안타깝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간호사들이 추구하는 봉사와 희생정신을, 나라로부터 녹(祿)을 받는 공무원과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이 본받아 실천한다면 더욱더 정직하고 따뜻한 세상이 열릴 것 같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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