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 고등학교 등하교 길은 논둑길이었다.

오래 동안 잊었던 그 논둑길을 졸업 후 실로 육십여 년만의 동기로부터 얻어듣고 걷잡을 수 없는 추억 속에 빠졌다.

나의 중고교 학교시절 등교 길은 논둑길이었다. 새로 모내기를 끝낸 논둑길은 질퍽한, 때로는 미끈미끈한 습기 많은 흙길이었다. 한창 벼가 익을 때는 여기저기서 논 메뚜기가 뛰어오르곤 했다.

누렇게 익은 벼를 거둘 무렵 아버지와 나는 그 논둑길을 걸어 할아버지 산소엘 갔다. 아마 추석 전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하교 길 논둑길을 걸으면서 학기말 시험 성적표 생각에 고민에 빠지곤 했다.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 늘 성적은 나를 실망시키곤 했다.

고3 때 생각이 난다. 어느 날 저녁 늦게 논둑길을 걸어 학교 구매부를 운영하던 이모 동창을 찾아갔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하교하고 없는데 그는 그때까지 구매부에 붙들려 하교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나 나나 실망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래도 꿈이 있었다. 가끔은 좀 어려움의 벽에 부딪힐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젊었다.

어느 날은 아침밥 대신 국수를 먹고 등교하던 날도 있었다. 논둑길을 걸으면서 시름에 빠지던 아침이었다. 길어야 20분쯤 걸으면 끝나던 논둑길, 그 논둑을 걸으면서 지나간 나의 청소년기.

오늘 생각지도 않던 S형이 60년 전의 내 모습을 꺼내면서 나를 아득한 시간의 저쪽으로 안내해주었다.

S형, 고마워-.

/ 김세영(전 조선일보 기자)

저작권자 © 계룡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