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코헬렛’(설교자)의 경험

이용웅 주필(전 연합뉴스 대전,충청본부장)
이용웅 주필(전 연합뉴스 대전,충청본부장)

‘인생에 대한 탐구’를 다룬 지혜문학서 전도서의 첫째 부문(1:1∼6:9)에서 설교자 코헬렛(솔로몬 왕)은 첫 주제인 ‘인생 탐구’를 통해 ‘인간 만사 헛되다(1:1-11)’는 결론에 도달한다. 코헬렛은 이어 자신의 ‘경험(1:12-18)’과 ‘쾌락 추구에 대한 탐구(2:1-12)’, ‘지혜와 어리석음에 대한 탐구(2:13-17)’, ‘수고의 열매에 대한 탐구(2:18-26)’ 등 둘째-다섯째 주제 탐구를 통해 인생의 허무와 덧없음과 무상함을 증명해 보인다.

코헬렛는 그의 둘째 주제 ‘인생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이렇게 전한다. ‘나 코헬렛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으며 하늘 아래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아보아 지혜를 깨치려고 무척 애를 써 보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괴로운 일을 주시어 고생이나 시킨다는 것을 알기에 이르렀다.’

‘하늘 아래 벌어지는 일을 살펴보니 모든 일은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었다.’ '구부러진 것을 펼 수가 없고, 없는 것을 셀 수야 없지 않는가!’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서 왕 노릇한 어른치고 나만큼 지혜를 깊이 깨친 사람이 없다. 나만큼 인생을 깨쳐 지혜를 얻은 사람이 없다. 나는 이렇게 자신을 가지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어리석고 얼빠진 일인지 알아보려고 무척 애를 써 보았지만, 그것 또한 바람을 잡는 것 같은 일이었다.’ ‘어차피 지혜가 많으면 괴로운 일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아지는 법이다(전도서 1:12-18).’

솔로몬(코헬렛))은 동서고금을 통해 현자의 본보기로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둘째 주제 ‘인생 경험’을 통해 지혜와 지식과 교양이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지혜와 지식은 인생의 덧없음을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셋째 주제 ‘쾌락 추구에 대한 탐구에 나선다.

쾌락 추구에 대한 탐구

‘향락에 몸을 담가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더니 그것 또한 헛된 일이었다.’ ‘웃음이란 얼빠진 짓이라, 향락에 빠져 보아도 별 수가 없었다.’ ‘지혜를 깨치려는 생각으로 나는 술에 빠져 보기도 하였다. 하늘 아래 이 덧없는 인생을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것이 좋을까 알아내려고 하였다.’ '나는 큰 사업도 해 보았다. 대궐을 짓고 포도원을 마련했으며’ ‘동산과 정원을 마련하고 갖가지 과일 나무를 심었고’ ‘늪을 파서 그 나무들이 우거지게 물을 대었다.’ '사들인 남종 여종이 있었고 집에서 난 씨종도 있었고 소떼 양떼도 많아서 나만큼한 부자가 일찍이 예루살렘에 없었다.’ '나는 내 통치 아래 있는 모든 속국 왕실 창고들에서 금과 은을 거두어 들였다. 노래 불러 주는 남녀 가수들과 수청을 드는 여자도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나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왕 노릇한 어떤 어른보다도 세력이 컸다. 나는 늘 지혜의 덕을 보았다.’ '보고 싶은 것을 다 보았고 누리고 싶은 즐거움을 다 누렸다. 스스로 수고해서 얻은 것을 나는 마음껏 즐겼다. 나는 이렇게 즐기는 것을 수고한 보람으로 알았다.’ '그러나 내가 이 손으로 한 모든 일을 돌이켜 보니, 모든 것은 결국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었다. 하늘 아래서 하는 일로 쓸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왕 위에 오르는 사람이래야 선왕들이 이미 한 일밖에는 더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2:1-12)?’

코헬렛은 셋째 주제 ‘쾌락 추구에 대한 탐구’에서 스스로 자신을 성취한 행복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그러나 성공을 하고, 큰일을 이루어 내고, 돈을 많이 벌고, 쾌락을 마음껏 누리고, 지식을 많이 쌓고, 권력을 잡은 사람이 행복한 듯 보이지만 실상 이 모든 것이 한 순간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허무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넷째 주제 ‘지혜와 어리석음에 대한 탐구’에 나선다.

지혜와 어리석음에 대한 탐구

'나는 지혜롭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리석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고 했다.’ '빛이 어둠보다 낫듯이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낫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지혜로우면 제 앞이 보이고 어리석으면 어둠 속을 헤맨다고 했지만, 그래 보아야 둘 다 같은 운명에 빠진다는 것을 나는 안다.’ '“어리석은 사람과 같은 운명에 빠진다면 무엇을 바라고 지혜를 얻으려고 했던가?”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이것도 또한 헛된 일임을 깨달았다.’ '지혜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모든 일은 잊혀지고 말리라. 지혜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과 함께 죽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산다는 일이 싫어졌다. 모든 것은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라.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나에게는 괴로움일 뿐이다(전도서 2:12-17).’

코헬렛은 넷째 주제 ‘지혜와 어리석음에 대한 탐구’에서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낫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혜로운 이나 어리석은 이나 다 같은 운명에 빠진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운명은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이나 필부필부(匹夫匹婦)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늘 아래에서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빛을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죽음이다. 지혜로운 이나 어리석은 이나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마는 다 같은 운명이라면 평생 지혜를 얻으려 애쓴 보람이 무엇인가? 이 역시 ‘헛되고 헛되다’는 것이 ‘지혜와 어리석음’을 탐구한 코핼렛의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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