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학박사 최헌묵
▲ 정치학박사 최헌묵

“새누리당은 대구에 삽살개를 공천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경북대학 총장을 공천하면 대구시민은 누구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마찬가지로 광주에 새누리당은 전남대 총장을 공천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진돗개를 공천하면 광주시민은 누구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얼마 전 수업시간에 한 학생으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일단은 소이부답(笑以不答)했다. 생각을 가다듬어 이렇게 대답했다. “글세”

학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대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절망적이었다.

30년간 정치 및 법학을 공부하고 10년 넘게 강단에서 올바른 정치와 바람직한 정치인상을 가르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또한 이런 사회를 다음 세대에게 대물림해야 하나 생각하니 기성세대로서 참담했다.

학문적으로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지역감정의 원인과 해결 방안이 분명히 있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현존하며 수혜자와 피해자가 분명히 있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정치권에서는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많은 정치개혁 특위가 있었고 위원회가 활동했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많은 시민단체에서도 많은 논의와 토론이 있었지만 해소는 요원한 상태이다.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적폐(積弊))의 유산으로 물려줄지도 모르는 지역주의는 이성보다 쉽게 동화되고 전염되며 다음 세대로 전이되는 특성으로 말미암아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특히 지역적인 격리성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완화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선거에서 득표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네거티브 선거 전략인데, 네거티브의 핵심 키워드는 북한변수와 지역감정이었다.

선거 초반에는 포지티브 선거 전략을 구사하다가 선거 막판에는 어김없이 북한과 지역주의가 등장한다. 여기에는 정당 및 후보자는 물론 언론도 상당 부분 가세한다. 유권자는 무감각적이고 관행적으로 투표한다. 특정 정당이 한 지역을 통째로 차지하는 지역패권화가 실현된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공고화된 지역패권에 얹혀가려는 무리는 패거리를 형성하고 인적확장을 오히려 거부하면서 보스 중심의 막강한 클러스터를 구축한다. 계파 중심으로 정당이 운영되고 그 속에서 암투가 발생한다.

패거리는 동지, 이웃, 공동체를 낮잡아 부정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근대국가 성립시기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린 적이 있다. 집적(集積)과 통치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만들진 민족주의 기저에는 우월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지역주의는 지역감정이 하나의 이즘(ism)으로 발전한 것인데 여기에는 배타성과 함께 동류의식에 기초한 정서적 유대와 함께 수혜심리와 피해의식 내포되어 있다.

어느 나라든지 지역색은 있고 소소한 지역감정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나 한국처럼 이성과 지식마저도 압도하는 감정 상태로까지 발전된 경우는 없다.

이렇듯 정서와 감성을 넘어 감정과 주의가 된 지역주의는 패거리를 양산케 되어 정상적인 가치판단과 시시비비를 압도하여 상식적인 정치행위를 가로 막는다.

패거리는 같은 패가 아니면 비록 같은 당원이라 할지라도 배격화고 증오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를 탄압의 대상으로 삼는 속성을 갖고 있다.

지역감정이 언제부터 왜 생겼는지에 대한 견해는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1987년 대선과 이듬해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확실히 정착되었다는데 의의는 없다. 하지만 지역차별 만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지역차별 역사가 현대에 이르러 단절되지 않고 오히려 지역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한 정치세력에 의해 교묘하게 재생산되고 조장된 것이다.

지역주의와 패권은 해당 지역을 넘어 지역 연고주의로 이어졌다. 현재의 거주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연고, 즉 고향이 어디냐에 따라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 극단적 호·불호 성향을 보이면서 지역주의의 공간적 확장으로 나타났다.

그 끝은 언제일까?

/ 엄사면 대동아파트 최 헌 묵(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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