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을 넘보는 인간의 교만-

사람 관계에서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 있다. 바로 교만한 사람들이다. 한자어 교만(驕慢)의 우리말 풀이는 아직 제대로 된 임자를 못 만나 제멋재로인 야생마처럼 ‘잘난 체하며 뽐내는 건방진 태도’를 뜻한다.

교만은 ‘확실한 기준 없이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교오(驕傲)’와 거만(倨慢), 오만(傲慢)과 방자(放恣) 등과 상통한다. 이런 태도를 가진 자의 중심에는 자기 능력 밖의 것을 이루려는 주제넘음, 자신이 지닌 능력이나 자격 이상의 명예를 추구하거나 이를 위해 악한 방법을 쓰는 과망(過望), 자신의 우월성을 나타내려 절제 없이 애쓰는 허세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속성은 대개가 이웃을 어려워하거나 조심스러워하지 않고, 무례하고 건방지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선악과(善惡果)’와 관련된 인류의 타락 장면(창세기3:1-24)이 나온다. 아담과 하와가 뱀(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과 똑같이 되려 했다가 마침내 낙원에서 쫓겨나게 되는 설화다. 뱀이 간교의 화신이라면 인간은 하느님까지 넘보는 교만의 화신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넘쳐나는 교만의 화신들-

 

과거나 현재나 교만의 화신들이 빚어낸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가까운 과거 사례가 바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쟁으로 기록된 제2차 세계대전이다. 과대망상이 욕망과 하나 되어 교만의 극치에 이른 히틀러와 무솔리니, 일본 천왕의 군부가 일으킨 이 전쟁으로 북남미를 제외한 전 대륙이 전쟁터가 되어 5천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다.

오늘의 세상에도 이런 자들이 넘쳐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백성을 폭압하며 굶주리게 하고 같은 동포에게 망발을 일삼는 북한 김정일과 그 일당, 독도 및 위안부 관련 망언 등 외교적 결례를 서슴지 않는 일본의 아베 무리가 그렇다.

우리나라 지도층과 권력층, 재벌 총수와 재벌 2세 등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과 국가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은 지도층과 권력층 상당수가 권력에 사로잡혀 안하무인격 처신에 익숙해 있다. 국가와 국민 덕택에 재벌이 된 재벌 총수와 재벌 2세 상당수의 ‘갑질’ 행태 또한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정녕 ‘나만이 최고’인 교만하기 짝이 없는 혐오의 대상들이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덕 중의 덕 겸손-

 

교만이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라면 누구나 좋아하고 가까이 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 겸손한 사람이다. 겸손(謙遜)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말이다. 겸손은 ‘겸손한 태도로 남에게 양보하거나 사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겸양(謙讓)’과 상통한다. 겸손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德目) 중 하나로, 덕 중의 덕이다. 덕(德)은 노력이나 수양이나 교육으로 사회적인 규범이나 도덕을 닦아, 그 결과 애쓰지 않고도 규범이나 바른 길을 저절로 행할 수 있게 된 상태를 뜻한다. 부연하면 도덕적 윤리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인격적 능력과,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에 거침이 없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유교에서 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禮)에서 우러나온다고 했다. 사양지심은 곧 겸양지심(謙讓之心)이다. 예(禮)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다. 이웃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바로 예의요, 이 예의야 말로 겸손의 덕에 이르는 문턱이다.

겸손은 자기 비하가 아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겸손한 사람은 자기의 모든 것을 아는 지혜로운 자다. ‘내가 어디에서 온 존재인지’, ‘나의 재능과 지식은 어디에서 얻은 것이며 어떤 수준인지’, ‘나 혼자만이 살 수 있는 존재인지’, ‘나 혼자 잘나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인지’ 등을 깨우친 사람이다.

세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것이 이 세상살이다. 한 사람은 나보다 낫고, 또 한 사람은 나보다 못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잘난 이를 존경하고 못난 이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이 겸손의 첫 걸음이다. 진정한 존경과 사랑이 바탕이 된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가진 것을 내려놓는다. 그래서 겸손은 결코 자기 비하가 아닌, 지나침도 부족함도 없는 중용이다. 성경에도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마태오 23:12, 루가 14:11)’ 고 했다.

많은 이들이 오늘에도 ‘제국주의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민족독립투사’ 안중근 의사와 일제 때 ’국책보상운동의 선구자‘ 서상돈 옹,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이태석 신부, 정의와 힘없는 자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한국 가톨릭의 수장 김수환 추기경, 무소유의 법정 스님, 죄수를 사랑한 김홍섭 판사 등을 기억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버리고 내려놓은 겸손하고 용기 있는 분들이었다.

특히 지난해 8월 우리나라를 방문해 겸손과 용기로 국민들을 감동시킨 프란치스코 교황의 열기는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겸손에는 반드시 영광이 따르게 마련이다.

 

-교만과 겸손에 대한 잠언-

 

과연 나는 다른 이의 혐오의 대상인가?, 아니면 누구나 좋아하고 가까이 하고 싶은 대상인가? 교만과 겸손에 대한 지혜문학서 잠언(10:1-22:16, 29:23)과 집회서(3:17-31)의 격언은 오늘날 겸손이 얼마나 큰 덕인지를 일깨우는 지혜의 외침이다.

‘교만에는 재난이 따르고 겸손에는 영광이 따른다(잠언 18:52).’

‘거만한 자를 치면 어리숙한 사람도 철이 들고 슬기로운 사람을 꾸짖으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19:25).’

‘거만한 자에게는 채찍이 떨어지고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매가 내린다(19:29).’

‘거만한 자가 벌 받으면 어수룩한 자가 지혜를 얻고 현자가 가르침을 받으면 지식이 더해진다(21:11).’

‘잘난 체 우쭐대는 사람을 거만한 자라 한다. 그런 사람은 남을 깔보며 무례한 젓을 한다(21:24).’

‘사람이 겸손하여 하느님을 경외하면 재산과 영예와 건강을 누린다(22:4).’

‘거만한 사람을 내쫒아야 불행이 없어지고 다툼과 욕설이 그친다(22:10).’

‘교만한 사람은 멸시를 받고 겸손한 사람은 존경을 받는다(29:23).’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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