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기고
대한·민국·만세
계룡일보  |  webmaster@gyeryongilbo.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5.01  15:00:34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세태를 반영하는 시대적 이데올로기와 예능을 절묘하게 조합한 일종의 가족 다큐멘터리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

 지온이, 사랑이, 쌍둥이, 삼둥이를 보면서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 만드는 데도 일조하고 있는 것 같아서 흐뭇하다.

 출연하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대한·민국·만세 삼둥이가 더욱 눈길을 끈다. 그것은 삼둥이가 보기 드문 경우이기도 하지만 이름도 한몫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대한·민국·만세라는 이름을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그저 평범해 보이는 사내아이 이름이지만 합쳐 놓으면 의미는 확 달라진다.

 송일국씨가 아이들의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송일국의 외할아버지 김두한, 외증조할아버지 김좌진 장군과 관련성이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김두한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냐의 여부는 아직까지도 설왕설래하므로 각설하고, 대한·민국·만세라는 명사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 보자.

 먼저, ‘대한(大韓)’은 우리민족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민족을 한(漢)이라 하듯이 우리민족은 예부터 한(韓)이라 불려졌다. 이는 삼한시대(三韓時代)로 거슬러 올라간다.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여있던 조선 말기 민족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재정립하기 위해 1897년 고종은 조선이라는 국호를 버리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고종 자신은 황제로 등극해 전하(殿下)에서 폐하(陛下)가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는 사대주의(事大主義)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국호였기에 새롭게 대한을 사용한 것이다. 다만 군주제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의미를 담아 제국(帝國)을 붙여 대한제국이라 한 것이다.

 ‘민국(民國)’이란 의미는 상해에서 임시 망명정부를 수립할 때, 당시의 국호였던 대한제국에서 주권의 소재가 제왕이 아닌 백성(국민)에게 있음을 천명하는 뜻을 담아 대한민국으로 한 것이다. 즉 국체(國體)를 제국에서 민국으로 바꾼 것이다.

 이는 세습제인 군주제가 선출제인 공화제로 바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출범한다는 의미와 정통성을 담아 그대로 대한민국이 국호가 된 것이다.

 ‘만세(萬歲)’는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만세라 하지 못하고 천세(千歲)라 했는지는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사대주의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조선시대부터 자의반타의반으로 고착화 된 것으로 보인다. 만세는 황제국인 중국만이 사용할 수 있는 표현방식이었으므로 우리는 이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낮춰 천세라 한 것이다.

 우리민족이 만세를 목청 높여 부른 것인 실로 오랜만인 3·1독립운동 이후부터인 것을 감안하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따라서 만세는 단순한 만세가 아니다. 만세라 외치기까지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만세와 함께 덧붙여 생각할 것이 독자적인 연호(年號)를 사용하는 문제인데,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 연호가 없다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는 자국의 역사성과 종교, 정체성이 담긴 연호를 서양연호와 함께 병기(竝記) 또는 독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웃 일본도, 북한마저도 자국의 연호를 사용하고 있음을 상기해 볼 때,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기독교에 기반 한 2015라는 연호만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사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것이다.

 사실 우리민족은 삼국시대 이래 중국 왕조들의 연호를 따랐기에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적이 드물다. 태봉의 궁예, 고려의 왕검 때 잠시 사용하였고 갑신정변 이후 건양(建陽), 대한제국 하에서의 광무(光武), 해방 이후부터 1960년까지 단기(檀紀)와 서기(西紀)를 병용 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서양연호를 사용하면서 국민 중에는 올해가 단기 몇 년인지를 알고 있는 이가 많지 않다.     

 한때, 단기 부활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국조 단군이 실존 인물이었느냐에 대한 논쟁, 우상숭배 논쟁 등 연호문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된 이후 논의 자체가 없어졌다.

 대한·민국·만세·단기 4348년(서기 2015년) 시린 봄이 한창이다.

/최헌묵 정치학 박사

계룡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충청남도 계룡시 계룡대로334 원타워5층  |  대표전화 : 042)841-0112  |  팩스 : 042)841-5112  |  e-mail : gdnews114@naver.com
등록번호 : 충남, 아 00206  |  등록연월일 : 2013.10.22  |  편집발행인·청소년보호책임자: 권기택
Copyright © 2022 계룡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