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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문학서(智慧文學書) 이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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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24  14: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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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경외신앙의 뿌리 십계명(十誡命)

 

 구약성경의 지혜문학서, 특히 잠언의 키 워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며 섬기는 것’이 곧 ‘지혜의 근본이요 시작’이라 했다. 지혜문학서에 제시된 하느님 경외 신앙은 바로 십계명(十誡命)이 그 뿌리다.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 모세가 시내산(시나이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이 십계명은 구약성경 출애굽기(20, 2-17)와 신명기(5, 6-21)에 기록돼 있다. 10계명은 인간이 정의롭고 평화롭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 인관과 인간의 관계를 드러낸 하느님의 계시(啓示)다, 유다교나 그리스도교를 계시종교(啓示宗敎)라 함은 바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은총과 깨우침을 바탕으로 성립됐기 때문이다.

 

 -십계명의 근본은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 

 

 모세가 전한 십계명은 ‘하느님을 흠숭하라’ 등 사람이 하느님께 드려야할 세 계명과 ‘부모에게 효도하라’ 등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섬기는) 일곱 계명으로 구성돼 있다. 하느님 관련 세 계명은 ‘하느님을 흠숭하라’,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안식일(주일)을 지켜라‘ 등이다.

 또한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일곱 계명은 ‘부모에게 효도하라’, ‘사람을 죽이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을 하지 말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 등이다.

 하느님 관련 세 계명과 사람 관련 일곱 계명은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 ‘인간 서로의 사랑’으로 요약된다. 

 십계명에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계명 세 가지와 하지 말아야 할 계명 일곱 가지가 있다. 적극으로 해야 할 계명은 ‘하느님을 흠숭하라’, ‘안식일(주일)을 지켜라’, ‘부모에게 효도하라’ 등이며 ‘사람을 죽이지 말라’ 등 나머지 일곱 가지는 해서는 안 될 계명이다.

 모세는 모든 백성들 앞에서 십계명을 선포하며 이렇게 이른다. ‘이 계명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약속이다. 이 계명을 잘 지켜야 너희와 너희 후손이 대대로 행복하고 잘 살게 될 것이다. 너희에게 명한 이 모든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이것을 너희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주고,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 항상 말해주라(신명기5, 32-6, 1-7)’.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나 이 계명에 대한 충성과 배반을 반복한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정착한 뒤 이웃 나라 백성이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지는 등 하느님에 대한 신의를 배반한다. 반면 다윗과 솔로몬 등 왕과 백성이 하나로 하느님을 섬기며 계명에 충실함으로써 나라가 융성하기도 한다. 이 멸망과 부흥을 하느님 섭리 안에서 기록한 것이 바로 구약성경이다. 이미 언급했듯 이 역사 체험을 통해 인간의 하느님 흠숭과 인간 서로서로의 사랑만이 곧 행복과 평화로 이끄는 길임을 전하는 잠언 등이 바로 지혜문학서다.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세 기둥, 종교 ‧ 도덕 ‧ 법-

 

 인간 사회를 지탱시키는 세 기둥은 종교와 도덕(윤리)과 법(법규 및 규범)이다. 오늘의 사회는 고대와 중세의 ‘신’ 중심에서 ‘인간’이 중심이 된 사회다. 세계 72억 인구 중 종교 인구는 그리스도교 21억4천만 명, 이슬람교 11억1천만 명, 힌두교 9억 명, 불교 4억 명, 유교 및 도교 1억5천만 명, 유다교 1천3백만 명, 기타 민속종교 2억7천만 명 등 50억에 이른다. 이는 세계 인구의 70%에 이르는 수치다. 세상사람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이 종교를 가진 셈이다. 인간 중심의 사회가 만개했지만 그럼에도 종교의 위세는 여전하다.

 ‘생로병사’는 자연의 이치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영원토록 살고 싶어 한다. 인간을 종교적인 실존이라고 함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상의 온갖 사상과 이념, 과학 등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한다. 그래서 종교는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들 한다.

 허나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 평화가 없는 것은 재물과 부귀, 명예와 권력 등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인간 본성과, 사랑과 평화와 자비를 외치는 이들 종교마저도 본연의 가르침과 계명을 뒷전으로 한 채 종교를 빙자해 욕심을 채우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오늘의 세상은 오히려 종교가 세상에 분열과 혼란 등의 폐해를 낳고 있다, 종파가 다르다고 해 같은 민족이 갈라져 싸우며 서로 피를 보고 있기도 하다. ‘평화의 신’인 ‘알라 신’을 믿으면서도 같은 동포와 형제 국가, 이웃 나라, 나아가 세계를 상대로 무력과 살생을 멈추지 않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자(IS)가 그 단적인 예다(다음호 계속)

/이용웅 주필(전 연합뉴스 충청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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