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명당(明堂)과 길지(吉地)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동주택에 거주함에 따라 집터에 대한 관념은 거의 사라졌고 화장문화(火葬文化)가 보편화되면서 묫자리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으나 살고 있는 곳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관심은 여전한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계룡시는 풍수지리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평가되어져 왔는지를 아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길지 또는 명당으로 불리어지는 곳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계룡산 삼십리(鷄龍山 三十里), 생거 진천(生居 鎭川), 사후 용인(死後 龍仁)이라 하여 대표적인 명당으로 여겨왔다.

 계룡산 삼십리는 계룡산을 중심으로 삼십리 즉, 12km 내에는 홍수나 가뭄, 혹서나 폭설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지 않아서 사람이 거주하기 좋은 땅이라는 의미다.   

 생거 진천, 사후 용인은 살아서 생활하기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 영면하기는 용인이 좋다는 뜻이다. 이 말은 최유경 선생의 효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단순히 전설이라는 보는 입장으로 나뉘나 실제로 진천은 분지형의 기름진 평야와 풍부한 수원(水源)을 갖고 있고 용인은 산수가 수려하고 땅이 좋은 곳이다.

 풍수지리가 미신이냐 과학이냐 아니면 전통사상이냐에 대한 입장 차이는 존재하지만 앞으로도 풍수지리에 대한 관심은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이는 종교와 사상을 떠나 인간은 모두 자연의 일부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공통점과 함께 이왕이면 좋은 환경 속에 살다가 편안히 영면하고픈 것이 인간의 기본 욕망이기 때문이다.

 사실 풍수지리는 오랜 세월 전통 민속신앙과 함께 불확실과 미지의 시공(時空)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과 물음에 대한 위안과 치유의 기능을 함께 해 왔다. 동양철학의 일부로만 인식되어 오던 풍수지리가 특수대학원에 정식과목으로 개설되면서 기존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부동산 및 인테리어들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계룡시와 계룡산은 어떤 곳일까?

 계룡시는 계룡산의 주봉인 천황봉 밑에 남향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계룡산은 845.1m로 우리나라 산중에서 309위에 해당하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높이나 크기만으로 보자면 그저 평범한 산인 계룡산이지만 역사적으로 계룡산만큼 세인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은 산도 없다. 근자에도 신행정 수도, 충남도청 이전, 국방대학교 이전 논의가 개진될 때마다 계룡산의 풍수지리적 측면이 많이 회자되었다.

 계룡산에 대한 역사성을 말할 때 대개는 정감록과 조선의 계룡산 천도론, 신흥 민족종교 및 각 종파의 밀집, 6·25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의 정착 등을 생각하지만 계룡산의 유명세는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북에는 백두산, 남에는 지리산, 동에는 금강산, 서에는 묘향산, 중앙에는 계룡산이 있다’ 하여 오래 전부터 계룡산을 우리나라의 5대 명산으로 꼽으면서 오악의 중심으로 여겼다.

 조선시대 초부터 묘향산에 북악단, 지리산에 남악단, 계룡산에 중악단을 세워 나라의 제(祭)를 올렸으며 현재도 유일하게 신원사 경내에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조선 영조 때 실학자이면서 풍수지리학의 대가였던 이중환이 쓴 지리서 택리지(擇里志)에서도 조선의 명산 네 곳 중에서 계룡산을 강원도의 오대산, 서울의 삼각산, 황해도의 구월산과 함께 꼽았는데, 이는 풍수지리적 측면과 함께 역사성과 효용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계룡산은 태백산맥이 끝나는 남쪽 지리산에서 다시 북으로 내달려 마이산과 대둔산을 지나장쾌하게 뻗어 올라온 금남정맥의 종착지이면서 전라도 장수에서 발원한 금강 물줄기가 북쪽으로 흘러 계룡산을 휘돌아 나가는 금강 본류의 최북단이다. 이처럼 산태극과 수태극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산세와 수세가 한반도에서 가장 기운찬 곳이면서 사람들이 동서남북어디에서도 접근하기가 용이한 산이다.

 계룡산은 대전, 공주, 세종시민들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이다. 이런 계룡산의 정남향에서 사는 계룡시민은 항상 볼 수도 오를 수도 있으니 참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최헌묵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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