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김기종씨의 충격적인 폭력사건이 있었다.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고 쾌유를 빌었다. 입원 6일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여 천만다행이었다.

 이 사건을 대하면서 과유불급(過猶不及), 과공비례(過恭非禮)란 말이 생각났다.

 과유불급은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같다’라는 뜻이다. 혹자는 이를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라고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해석을 떠나 지나침을 경계한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과공비례는 ‘공손도 지나치면 예의가 아니다’ 또는 ‘지나친 공손은 예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김기종씨의 폭력행위는 과유불급의 전형으로 보인다.

 그는 연행되면서 전쟁 반대를 외쳤다. 한·미 키 리졸브 훈련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그의 말처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원하는 국민은 없다. 모두가 전쟁을 반대한다. 다만 전쟁 억지 방법 대한 논점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전쟁 반대와 미국대사에 대한 폭력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전쟁에 반대하고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도, 의사표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그로 인해 우리국민과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얻은 것 하나 없이 순전히 잃기만 한 것이 너무 많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한국사회가 얼마나 경도되어 있는지, 내재된 갈등 구조가 얼마나 심각한지, 돌발변수에 대처하는 위기관리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알게 되었고 이를 가감 없이 전 세계에 노출하고 말았다. 

 외교관이나 정치인은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사건 발생 후 피해자인 미국대사의 언행과 한국정치인들의 언행, 그리고 이 사건을 대하는 미국정부와 한국정부는 사뭇 달랐다. 미국대사는 사건 직후 “같이 갑시다”라고 한글로 의연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반면, 한국의 정치인들은 이해득실부터 생각해서인지 절제되지 않은 언행이 많았다.   가정(假定)에는 추정(推定)과 간주(看做)가 있다.

 추정은 확실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그 반대 증거가 제시될 때까지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여 법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반대 증거가 나오면 즉시 효력이 상실된다. 이에 비해 간주는 그 사실이 진실이냐의 여부를 불문하고 권위적으로 그렇다고 단정해 버리고 법적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다.

 사건 의도 및 배경에 대해 미국은 신중한 입장에서 추정을 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간주해 버린 것은 아닌지 짚어 볼 문제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생각해 봐야 될 또 하나의 문제는 과공비례(過恭非禮)가 아닌가 싶다.    일부 단체와 사람들이 보인 행위들은 미국대사와 미국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으로 이해하면서도 왠지 씁쓸한 기분은 지울 수 없다. 전형적인 과공비례이고 또 다른 과유불급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도 국격(國格)이 있다.

 격식을 갖춘 정부당국자 및 정당대표들의 위로방문과 유감표시가 있었고 많은 국민들이 걱정하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쾌유를 기원한다면서 벌인 퍼포먼스나 석고대죄, 개고기 소동, 김정은 사진 화형식 등은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와 미국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과공비례로 비춰지지 않았을까 싶다.

 사후약방문격인 측면도 있지만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맞게 이번 사건을 성숙하게 처리하고 돌발변수에 대처하는 매뉴얼을 이번 기회에 만들어야 하겠다. 그것이 바로 유사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고 국격을 높이는 길이다. 또한 이번 사건을 국내정치에 활용하거나 미국의 숙원사업 실현을 위한 지렛대로 이용해서도 안 될 것이다.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의 말처럼 비 온 뒤에 땅은 더 단단해 지는 법이다. 그리고 전화위복이란 말도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과공비례(過恭非禮) 현재 우리에겐 이 말이 정답인 듯싶다. 

/최헌묵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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