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록하고 가르치며 배우는 주된 목적은 과거를 반면교사로 삼아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이나 국가는 대개 불행을 겪는다.

 역사를 긴 호흡으로 보면, 헤겔의 변증법적 정반합의 원리가 작동하여 발전해 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성(自省)이 전제된 경우였고 되레 반작용이 더 크게 작동하여 퇴행한 역사 또한 무수히 많다.

  역사는 반복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100년 전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안타까움일 것이다. 당시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철학과 가치관에 입각한 주의·주장과 입장, 삶의 방식이 있었겠지만 그 당시를  바라보는 우리 후손들 평가는 냉혹하다.

 외우내환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책과 반성은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당파주의와 신분질서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일본의 부당한 지배에 저항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위해 앞장서거나 식민상황을 이용하여 부와 권세를 유지 또는 취득하는 데 골몰했던 조상들을 부끄러워한다. 그나마 우리 후손들이 위안으로 삼는 것은 목숨까지 바쳐 조국의 독립과 애민애족에 힘쓴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00년 후 후손들은 현재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기술할까 

 사회분야 만큼은 혹독한 평가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후손들의 역사책 요약본에는 사회현상이 이렇게 쓰여 지지 않을까 싶다. 

 “당시 한국사회는 눈부신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거나 희망이 충만한 사회는 아니었다. 많은 영역에서 분열과 대립이 중층적으로 격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 

 지역적으로는 영남과 호남,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대립이 지속되었고 지역 간 생활수준의 편차가 심했는데, 이는 중앙정부와 정치인들이 조장한 측면도 많았다. 지역감정이 얼마나 심했는지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수도권 집중화로 동일 면적의 아파트일지라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가격은 10배까지도 차이가 났다.

 세대 간의 갈등도 심했는데, 당시 보수당이었던 새누리당 출신 대통령 지지도가 이를 함축적으로 말해줬다. 대통령에 대한 20-30대의 지지율과 60-70대의 지지율 격차가 40%p이상으로 나타났다.

 물질만능주의가 사회전반을 지배하는 가운데 경제력의 집중, 부의 세습, 빈익빈부익부 현상 때문에 신분 이동이 몹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같은 직장 내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었다. 비정규직은 급여 및 인사에서 많은 차별을 받으면서도 항상 해고의 두려움을 안고 업무에 임해야 했다.

 당시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2위 정도였지만 자살은 연간 1만4,000명에 달했는데, 이는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중 상당수는 생활고 때문이었다. 

 1990년 전후로 해체된 냉전유물인 좌우이념 대결이 남북 간에는 변형된 형태로 지속되었고 남한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는 상대를 적처럼 대하였고 존재를 용인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 북미 관계에 따라 한국 사회는 크게 요동쳤다.   한국은 북한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었고 전시작전권도 미국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을 비판하거나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위험한 사상으로 취급되거나 심지어 종북주의자(從北主義者)로 의심받았다.

 진보세력 중에는 자주파(NL)가 중심이 되어 만든 통합진보당이 있었는데, 이들이 북한을 찬양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면서 내란을 음모했기 때문에 해산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다. 이런 판결에 대해 1950년대 전반기 미국사회를 지배했던 매카시즘의 한국화를 우려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정당해산 판결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0%가 헌재의 결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많은 사회갈등 때문에 지출되는 비용이 매년 40조에 달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는데(훨씬 많게 나온 연구 결과도 많았음), 이 돈은 당시 한국의 연간 국방비를 한참 상회하는 것이었고 학교 교육과 급식을 모두 무상으로 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최헌묵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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