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일이다. 생면부지의 귀한 분을 만나게 될 때 더욱 그렇다. 30여 년 간 언론에 종사하며 이런 저런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런 기회 덕에 대통령도 여러 분 만날 수 있었다. ‘대통령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큰 영광이냐’는 이들도 있다. 물론 대통령과의 만남을 앞두고 설렘이 없진 않았지만 기자 직분 상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따로 있는 게 아니어서 속된 말로 ‘영광’이란 말은 과분한 치사다.

필자가 만난 역대 대통령은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등 5명이다. 이 중 최규하 대통령과의 만남은 취임 후(79년 말) 산업기지개발공사(수자원공사) 순방 때, 전두환 대통령은 1980년 여름 충북 보은 수해현장 시찰 때와 대통령 취임 후 일선 시․도 방문 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역시 일선 시․도 방문 때다.

대통령의 일선 시도 방문 때 초청 대상자는 대개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대통령과의 만남이 이뤄진다. 경호상의 문제와 대통령에 대한 시도지사의 시도정 브리핑 스케줄 등이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의 만남 시간은 인사와 악수가 전부여서 불과 몇 초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오찬에 앞서 대통령이 직접 국정 비전을 밝히는 시간이 마련돼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들을 기회가 있다는 점, 비록 형식적이고 짧은 시간이지만 소외계층과의 대화의 시간이 있다는 점, 그리고 말과 표정과 몸짓 등을 통해 대통령이라는 한 인간의 면모를 조금이나마 살필 수 있다는 점 등이 소득이라면 소득일 수 있다.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권력을 잡았든 국민의 한 사람으로 대통령을 만나 느끼는 점과 기대는 분명히 있다. 그 느낌의 첫째는, 악수를 청하며 내미는 손이 따뜻하고 눈을 맞추는 표정도 밝다는 점. 둘째, 누구보다 국가 안녕과 국민 행복을 위해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고독한 존재가 바로 대통령이라는 점. 셋째, 좋든 싫든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이라는 점, 넷째 야당을 비롯한 반대 세력의 도전이 만만치 않아 국정 수행에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이다.

아울러 이들 대통령에 거는 기대는 첫째, 겸손과 소통, 진정성과 설득, 지혜와 슬기, 결단력과 지도력, 상생 정치와 국민 대통합을 이루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둘째,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바람이 너무 큰 탓일까? 세월이 지나고 나면 이들 거개가 국민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와 함께 일부 대통령의 경우 망신과 치욕의 대상이 됨을 보게 된다.

2000년대 들어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2013년 2월 헌정 사상 여성 최초 대통령인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다. 서민 대통령을 자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국민을 실망시켰고, 이명박 대통령 또한 무리하게 추진한 4대강 개발사업 후유증과 남북관계 경색 요인 등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아직은 불통 대통령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이런 저런 이유야 있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최규하 대통령(대통령 권한 대행)과 통대선거로 당선된 전두환 대통령을 제외한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필자가 투표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는 김대중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뿐 이다. 공교롭게 야당 여당 대통령 한 명씩 당선된 셈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거의 낙선 후보만 골자 투표한 꼴이 됐지만 결코 후회는 없다. 그 이유는 여당 후보든 야당 후보든 그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민 다수가 선택한 만큼 그로 하여금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성원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다.

역대 어느 대통령이든 공(功)과 허물(過)은 있다. 지나간 세월을 다시 잡을 수 없고 흘러간 물을 되돌릴 수 없듯 공(功)을 허물(過)로, 허물을 공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바로 오늘, 지금이 중요하다. 현직 대통령이라서 좋은 점은 바로 과거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거울로 삼아 본받을 것은 본받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있음이다. 오늘의 상황에서 경제 살리기와 대박이 될 남북통일만큼 중요한 국정 현안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국민을 하나로 묶을 감동과 희망의 정치, 상생과 화합의 정치, 인간 중심, 생명 존중의 정치, 소외된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정치,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정치를 국민들은 더 목말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을 만날 기회는 없다. 그러나 꼭 이 말만은 하고 싶다.

/이용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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