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7일은 순국선열의 날이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 날이 무슨 날인지 잘 모른다. 우리 계룡시민도 순국선열의 날 행사가  매년 계룡시에 있는 광복단결사대 기념탑에서 거행 된다는 사실 또한 잘 모른다.

 일제 식민 치하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몸 바쳐 헌신하신 분들을 기리기 위하여 법률로 제정된 기념일이지만 그 숭고한 희생정신이 잊혀져 가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특히 우리 계룡시는 과거 두마면 지역으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 되었던 곳으로 면 단위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가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2014년까지 독립운동 포상자가 16명이나 되며 32명 유공자가 포상상신 준비 중에 있는 호국의 성지라 할 수가 있다.

 그 중에서도 광복단단장을 역임하신 한훈 선생은 을사오적 암살과 군자금 모금을 위하여 친일부호 처단을 목적으로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신도안 정장리 지역에서 거주하며 활동하였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이후 신도안지역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순국선열봉안소를 설치하고 매년 11월 17일에 추도행사를 6.20사업개시 전인 1982년까지 지속되어 오다가 중단되었으나, 그 후 2007년도에 남선면 정장리 한훈 선생 생가 부근에 광복단결사대기념탑을 세우고  광복회 주관으로 매년 추모제 행사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계룡시민들은 우리고장의 역사적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행사 참여 의식도 미흡한 실정이다.

 또 다른 독립운동의 역사로는 1919년 3월 1일 시작된 3.1운동은 일제 강점기 최대의 항일민족운동이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계룡지역에서는 4월1일 두계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두계장터 만세운동은 장날을 이용해 장터에 모인 군중들을 중심으로 왕대리 출신인 배영직 선생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배영직은 자신을 체포하려는 일제경찰과 격투를 벌이며 ‘독립만세’를 선창한다. 배영직의 활약에 고무된 참여자들은 다시 늘어나 1,000여 명에 이르렀으며 배영직은 체포되어 19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렇게 만세운동을 한 곳이 두마면 두계리 옛 장터이다.

 현재 두계장터 부근 엿 공장의 이웃에는 양기하 장군의 생가 터가 있다. 양기하 장군은 국권이 침탈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을 결성하고 교통부장을 맡았으며, 상해 임정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 하였고 1936년 이후에는 조선혁명군을 이끌고 항일무장 투쟁중 일본군과 교전에서 전사하신 분이다. 이렇게 우리 계룡에는 훌륭한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고 활동하던 지역에 기념탑을 건립하고 추도식을 거행하는 등 그 뜻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 정신의 계승과 시민들의 역사적 가치에 편승하기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이에 필자는 계룡시에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시는 군인과 그 가족이 대부분이어서 애향심이나 시민의식 고취가 대단히 어렵다. 그러므로 독립운동의 정신이나 그 분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그분들의 생가나 활동하던 곳에 두마면에 조선후기 예학자 김장생 선생의 뜻을 기린 사계로 처럼 도로 이름에 그분의 이름이나 호를 따서 명명한다면 이곳을 거쳐가는 시민들의 관심도 증가할 것이고  장병들 정신교육에도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본다. 아무쪼록 우리고장의 훌륭한 독립운동 업적이 헛되지 않도록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촉구하는 바이다.

/임정진 (계룡시 보훈단체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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