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금암 수변공원 내 정자에 한 노숙인이 머물고 있는데 그를 도울 방법이 없는지 묻는 제보를 받고 현장을 찾았다. 늦가을 추위와 싸우며 침낭과 낡은 옷가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노숙인은 얼굴을 빼꼼이 내밀고 기자를 힘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노숙인은 처음에는 배낭여행중이라며 자신을 소개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가 계룡시에 온지는 수 개월이 지났고 동료들과 근처 모텔에서 생활하며 일용직 근로자로 지냈으나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지자 돈이 바닥났고 결국 정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가장 좋은 복지는 좋은 일자리다’라는 지인의 말이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걱정이 앞서 시청 담당계장을 찾아 구제할 방법이 없는지 문의했다. 주민복지과 담당계장은 마침 한 시민이 이를 알려와 현장을 찾아 확인한 결과, 그는 서울에 주소지를 둔 39살 노숙인으로 용접기능사 자격증까지 보유하고 있다. 담당계장은 계룡시에는 노숙인을 위한 마땅한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인근 대전에 있는 노숙인 쉼터에 입소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이마저도 거부했다. 이에 따라 담당계장은 하루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말에 따뜻한 한 끼 식사라도 하라며 약간의 사비까지 건네주고 돌아왔다.

 날씨가 추워지자 다음날에 담당계장은 다시 한 번 노숙인을 찾아 더 추워지기 전에 노숙인 쉼터 입소를 권유했고, 취업을 위해 꼭 필요한 자격증을 분실했다는 노숙인의 말에 재발급 절차를 확인해 설명해주는 등 노숙인 구제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은 노숙인과의 대화 과정에서 알게 됐는데 이 외에도 인근 아파트 자치위원장과 몇몇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와 옷가지와 먹을 것을 주면서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고 걱정해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따뜻하고 고마운 공직자와 계룡시민의 마음을 노숙인이 조금이라도 안다면 얼른 힘을 내서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할 텐데 비가 내리는 늦은 밤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도 그는 아직도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잠시 예기를 나눈 후 집으로 돌아와 노숙인의 삶을 반추하노라니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BC 356~323년)과 통속에 살았던 가난한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일화가 떠올랐다.

 디오게네스는 멀쩡한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니며 ‘어둡다. 어둡다’를 외치며 세상을 떠돌아 다닌 그리스의 기이한 철학자였다. 

 추측하건데 그가 대낮에 들고 다닌 등불은 암흑과도 같은 세상에서 진정으로 이 세상을 구원해 줄 그런 훌륭한 인물이 없음을 안타까이 여기며, 그런 인물이 어서 빨리 나타나길 바라는 희망의 등불이었을 게다. 

 이후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가 머물고 있는 그리스를 정복하게 됐고 수많은 그리스인들이 알렉산더에게 잘 보이기 위해 줄서서 그를 찾아왔으나 끝내 디오게네스만은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알렉산더가 직접 그를 찾아 나섰고 도심지 외곽 한 통속에 머무르고 있는 디오게네스를 발견하게 된다. 알렉산더는 자신이 대왕이며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해주겠노라며 말을 건넨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내 소원이 있는데 말해도 되겠소. 조금만 옆으로 비켜주시오. 당신의 그림자가 햇볕을 가리고 있지 않소”라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다.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를 되묻는 말이다. 수많은 생명을 희생해서 얻은 권력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자기 희생이 진정한 행복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이뤄내지 못한 세계를 정복한 그 당당한 권력을 쟁취한 행복감과 따뜻한 햇볕에도 감사하고 고마워할 줄 아는 가난한 철학자의 삶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노숙인의 삶을 함께 떠올린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따뜻한 햇볕이 그리운 겨울이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계룡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한 노숙인의 모습에서 거창한 철학을 논하고자 하는 말은 결코 아닌 것이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연탄이 없어 걱정하고 있는 우리 이웃은 없는지, 끼니를 걱정하는 우리 어려운 이웃은 없는지 관내 복지사각지대를 세심하게 돌아봤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그 노숙인이 내일도 아직 그 자리에 있다면 디오게네스의 따뜻한 햇볕을 전하고 싶다.

 /전철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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