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십 년 전보다 훨씬 나아진 오늘의 세상에 우리가 모르는 사이 밀려온 ‘죽음의 물결’, 이른 바 ’죽음의 문화‘가 향락과 쾌락의 부추김 속에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병들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기적인 이 병리현상 앞에 너나없이 무뎌지고 무감각해지고 있는 게 오늘의 상황이다.

‘죽음의 문화’는 성적 자극이 넘쳐나는 대중문화, 세계 1위로 소비되는 포르노그래피, 통상적 연애 관계에 포함된 성관계, 그 결과로 이어지는 임신과 낙태를 비롯해 이혼과 자살, 안락사 등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인 사회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죽음의 문화’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이는 고(故)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이다. 1995년 ‘생명의 복음’ 회칙(回勅)을 통해서다. 그는 이혼, 낙태, 인공피임, 인공수정, 안락사 등 인간 생명의 존엄을 해치는 죽음의 문화가 인류가 처해 있는 시대적 징표로 보고 이에 어떻게 맞서야할 지를 가르치고 있다.

그의 이런 진단은 오늘날 세계적 추세인 이혼 합법화와 낙태 합법화, 안락사 합법화 등이 인간의 존엄성을 끝없이 추락시키고 있다는 복음적(福音的) 성찰(省察)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간 존엄성 회복’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 한국사회 역시 이 죽음의 문화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 하다. 산아제한 정책과 불법낙태 등 이미 지난 50여 년 간 너무나도 많은 것을 이 죽음의 문화에 내주었고, 앞으로도 내줄 것이 많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화의 첫걸음은 이혼의 합법화다. 이이진 죽음의 문화 행진은 낙태의 합법화다. 다음은 생명이 꽃으로 피어나야 할 부부의 진정한 사랑을 쾌락으로 왜곡시키는 인공피임법이다. 최근엔 안락사라는 죽음의 그림자가 세상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세 쌍이 결혼할 때 한 쌍이 이혼하고, 아기 한 명이 태어날 때 엄마 뱃속에서 두 태아가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 누구도 이 상황이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 상황을 고쳐야 하는 일이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거의 모든 문화권은 이혼과 낙태를 비윤리적이란 사회 통념 아래 이를 법으로 금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일부 나라들이 이를 합법화하면서 이제는 지구촌의 많은 이들이 이 같은 행위들이 반인륜적이요, 반윤리적이라는 것을 의식조차 못 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동익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은 이런 진단을 내놓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자유주의는 극단적 형태의 자유주의, 혹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라고 특정할 수 있다. 여기서 절대적 가치는 개인의 자유이다. 이들의 기본 노선은 개별 실존을 위한 투쟁이다. 이익과 관심만이 행동을 움직이는 기준이 된다. ‘내가 얼마나 내 일을 자유로이 행할 수 있는가?’ 이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기준이며, 따라서 이들에게는 참된 의미의 자유가 아닌 방임이 절대적 행동 기준이요, 규범이다.

개인의 자유를 구속한다고 여겨지는 법, 전통, 관습, 권위, 윤리, 도덕, 규범은 모두 생각하는 자유를 방해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거부 된다. 가정에서 부모의 정성어린 충고와 보살핌의 말씀도 하나의 구속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출이 그들에게는 자유인 셈이다.

이러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사상에서는 결국 ‘나’ 자신만이 절대적이며, ‘너’, ‘우리’는 ‘나’를 위한 도구로 전락되고 만다. 왜냐하면, ‘너’, ‘우리’도 ‘나’의 자유를 방해하면 당연히 거부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왜곡된 자유주의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것이 ‘죽음의 문화’이다. 내가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사는 이 사회에서 개인만을 극대화하는 자유주의는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은 죽어도 좋다’는 논리를 정당화한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약한 생명에게 기득권자의 횡포를 한껏 부리고,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강변하는 우리 사회가 과연 정상인가?

낙태죄를 폐지하고, 사회 경제적 이유로 낙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나, 온전한 인간 생명인 인간 배아를 생물학적 재료로 삼아서라도 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바로 왜곡된 자유주의 사상의 한 단면이다. 참된 자유는 나만의 자유가 아닌, 나와 너, 너와 우리가 함께 누리는. 반드시 주위에 대한 책임이 함께 따르는 자유이다.“

이동익 원장의 진단처럼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낙태와 이혼, 안락사 등 죽음의 문화는 바로 무책임한 이 왜곡된 자유주의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죽음의 문화는 나아가 쾌락과 안락이 정점인 물신주의와 배금주의의 날개를 달고 생명 경시, 인권 무시, 가정 폭력, 가정 파탄, 자살, 사회 분열, 전쟁, 기아 등 그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이런 상황의 죽음의 문화를 과연 생명의 문화로 바꿀 수는 없는 걸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8얼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집전한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 강론을 통해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정신적 쇄신을 가져오는 풍성한 힘이 되기를 기원한다”며 “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빈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고 생명이신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남성과 여성과 어린이의 존엄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빈다”고 소망했다.

고(故)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의 ‘생명의 복음’ 회칙(回勅)을 명쾌하게 표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강론에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이끌 해답이 있지 않나 싶다.

/이용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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