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마치고 명량해전부터 시작하여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까지를 소설화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해전을 ‘난중일기’에서 따랐다고 했듯 실존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의 상황을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는데, 마치 이순신 자신이 자서전을 써 내려가듯 내용이 전개된다.

 ‘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의 해전만을 다루지 않고 당시 백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도 함께 그려내고 있다. 백성은 무자비한 왜적의 칼날에 파리 목숨과 같고, 재산은 약탈당하고, 여자들은 성노예로 전락하고, 남자들은 적의 함선 격군(노 젓는 군인) 등 왜적의 부역꾼으로 끌려갔다. 소설이 아니라도 적의 발굽 아래 짓밟히는 백성은 그 이상 참담한 일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해놓고 선조는 정작 혼자 살겠다고 서울을 버리고 도망갔으니…  백성들이 그저 불쌍할 따름이다. 당시 왜적의 침략 아래 백성들이 당하는 고초를 생각하면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 나라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슴 깊이 느낀다.

 이순신 장군은 평소 왜적의 동태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수백 수만의 함선과 수군(水軍)을 양성하며 유사시를 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부산으로 쳐들어온 왜군을 치기 위해 결정적 시기를 엿보고 있는 상황에서 조정에서는 왜 적장 ‘가토’의 목을 가져오라고 성급하게 공격을 지시했지만 현장 지휘관 판단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하며 함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조정은 명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장군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하고 죄인으로 묶어 한양으로 압송, 갖은 고문과 형벌로 몸은 만신창이가 된다.

 조정은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 왜적을 공격하지만,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하며 이순신 장군이 양성해 놓은 정예 수군이 전멸하고 원균도 전사한다. 조정은 백의종군 하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게 되고, 명량해전에서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 적선을 섬멸한다. 결국 왜적은 퇴로가 막혀 군수물자 수송이 차단되고 육지에서 공격 능력을 상실, 임진왜란은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에서 싸운 12척의 배 중 10척은 원균이 칠천량 전투를 치를 때 휘하의 배설이라는 장수가 이끌던 함선으로, 당시 배설이 전장을 이탈함으로써 온전히 보존되었던 함선이라는 점이다. 한 때는 도망쳤던 탈영자들이 최정예 전투군으로 바뀌어 세계사에 유래를 찾을 수없는 전사를 기록한 것이다. 리더에 따라 탈영자가 되기도 했고, 정예 전투군이 되기도 했다는 얘기가 된다.

 배설이 영화 ‘명량’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암살 하려다 실패하고 거북선을 불태우고 나룻배로 도망치다 사살되는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하여 배설의 후손들이 명량 제작자를 명예 훼손으로 고발하기도 했다.(역사적으로는 배설 장군은 명량해전 보름 전 신병 치료를 이유로 허가를 받고 뭍에 내려갔다가 종적을 감췄으나 2년 뒤 권율 장군에게 붙잡혀 참수되고, 임진왜란이 끝난 후 그 동안 무공이 인정돼 사면 복권 명예를 회복했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 장군은 전장의 지휘관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고민과 갈등 못지않게 정치적으로 고뇌와 고독감을 깊이 느끼기기도 한다. 연전연승을 거듭하면서 백성들로부터 두터운 신뢰와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되지만, 상대적으로 선조는 무능하고 어리석은 임금으로 위축되면서, 조정의 칼날이 이순신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낀다.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면 적의 칼날이, 승리하면 임금의 칼날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쪽 칼날 중 어느 쪽의 칼날을 받아야 할 것인가를 고뇌하며 장수가 죽을 곳은 전장이어야 한다고 독백한다. 이는 성경에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 다윗이 이기고 돌아오자 백성들이 ‘사울이 죽인 적은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적은 만만이라네’ 라고 노래하자 사울 왕이 다윗 장군을 시기하며 두려워했던 것처럼, 선조의 마음이 사울 왕과 같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본래 해군이 아닌 육군이었다. 청년 시절은 영웅의 탁월함이 돋보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 22세 무렵 무예 시작 → 28세 무과 낙방 → 4년 후 32세에 무과에 급제 권관(종팔품)으로 함경도 최전방 삼수(三水) 국경 수비 초급지휘관 → 36세 전라도 고흥 발포진 수군(水軍) 만호(종4품) 최초 수군 초급지휘관 → 42세 육군 함경도 조산보 만호(종4품) → 44세 정읍 현감(종6품) → 병마절제사(종3품) → 1591년 47세 수군 전라 좌수사(정3품) → 이후 계속 수군 장수로 근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고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 심훈 著 ‘칼의 노래’ 소개 -

/김학영(전 계룡시의회 의원)

저작권자 © 계룡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