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리더가 없는 시대,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자칭 리더는 많으나 인정받는 리더는 보이질 않고 리더십은 실종되었다. 리더와 리더십이 없거나 부족하면 필연적으로 소통 단절과 갈등 증폭으로 나타나고 불필요한 에너지가 소비되어 혹독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리더의 편협성과 역량 부족, 그에 따른 리더십의 혼돈은 우리 시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 전해져 악습으로 이어질 개연성을 갖고 있어 더욱 우려된다.

 후손들에게서 잠시 빌려 쓰는 것이 자연(自然)인 것처럼 현재 우리의 모습은 후손들에게 역사로 전해져 냉엄한 평가를 받는다. 이 시대, 이 사회를 후손들은 어떻게 기록하고 평가 할까?

 교황의 방문으로 한국사회의 치부가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알려졌지만 반성도,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부끄럽고 개탄스러운 일이다. 한국에 있는 그 많은 성직자들은 지금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기도하며 정진하고 있을까? 학자들은 무얼 더 연구할까?

 연민과 배려의 도덕적 사회가 되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이것이 어렵다면 최소한의 염치와 상식, 역지사지라도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과거는 현재로 투영되고 미래는 현재의 결과물이다.

 ‘알아야 면장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원래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 면면장(면할 免, 얼굴 面, 담장墻)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면(免)자가 생략되고 담장 장(墻)자가 길 장(長)자로 바뀌어 ‘알아야 면장(面長) 한다’라는 말로 와전되어 ‘뭘 알아야 면장이라도 한다.’, ‘모르면 나서지 말라.’라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원 뜻은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담장에 얼굴을 대고 말하는 것과 같은 답답한 처지와 상황에서 면(免)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려면 그와 관련된 지식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무지로 인해 본인은 물론이고 상대방이 답답함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옛날에는 배움이 부족하고 정보 접근이 어려워 무식해서 답답했다면 현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전부이고 진리라는 생각들 때문에 답답한 사회가 되었다. 따라서 원 뜻의 ‘면면장’과 현재의 ‘면장’의 본 뜻은 달라도 쓰임이 별반 다르지 않다 해도 무방할 듯싶다.

 또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다. 주지하다시피 지식과 인성을 닦고 가정을 이뤄 집안을 두루 편안하게 한 연후에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역순으로 해석하면, 천하가 태평하려면 제가(齊家) 한 사람이 치국(정치)을 해야 하고, 제가 하려면 수신(修身)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이독경(牛耳讀經), 마이동풍(馬耳東風)이란 말도 깊이 되새겨 볼 일이다.

 무지든 아집이든 상대방이 담벼락이나 소귀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은 답답함을 느끼게 하지 말자.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말이 한가로이 살찌울 때, 우리는 이 계절 천고면장(天高免墻)해 봄이 어떨까?

/최헌묵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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