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계룡시의회 의원

김미경 계룡시의회 의원
김미경 계룡시의회 의원

 “아가, 우리한테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라. 네 남편이 네 친정에 하는 만큼 하면 된다. 큰애가 네 친정에 잘한다 싶으면 잘하고, 못 한다 싶으면 너도 딱 그 만큼만 해라.”

 결혼식 후,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시부모님께 큰절을 하고 난 우리 부부에게 시아버지께서 하신 첫 말씀이셨습니다.

 처음엔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를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으니, 아버님께서는 “네 남편이 친정에 잘못하면 나한테 꼭 일러줘야 한다. 그리고 너도 우리한테 네 남편이 한 만큼만 하면 되. 알았지?”

 처음엔 긴장한 며느리를 편안하게 해 주시려는 아버님의 위트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간혹 “아가, 네 남편이 이 정도로 네 친정에 잘하고 있나? 그렇지 못 할텐데…” 란 말씀으로 단순한 빈 말씀이 아님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후로도 제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너그럽고 인자하게 모든 것을 받아주시고, 이해해주시고, 실수마저도 감싸 보듬어 주셨습니다.

 아들과 딸을 낳고, 시부모님과 한 집에서 생활할 때, 아들 손자가 더 좋으시면서도 어린 시절 딸이라고 차별대우 받은 며느리의 마음을 헤아려 일부러 딸아이를 더 예뻐해 주신 아버님.

 기분 좋게 취해 오신 저녁 무렵, 콧노래를 부르시며 퇴근해 오셔서 대문까지 마중나간 내 손에 “아가, 이거 맛있어 보여서 갖고 왔다.”하시며 초콜릿이며 귤 서너 개를 쥐어주시며 “혼자 먹어라.”를 연발하시던 아버님.

 시댁 동네 면장직으로 재직하셨던 아버님의 정년 퇴임식 날,  퇴임사에서 가족에게 감사의 말씀을 하실 때 어머님께 고맙다는 말씀 다음으로 며느리인 제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이어 주셔서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리게 하셨던 아버님.

 여름 제사 뿐 인 시댁 제사에 땀을 흘리며 음식을 장만하느라 정신없을 때, 등 뒤로 시원한 선풍기 바람이 느껴져 돌아보면 짐짓 먼 산 보시는 척 뒷짐을 지고 계시다가 “쉬엄쉬엄해라. 선풍기라도 틀지… 땀띠나면 어쩌려고...” 혼자 말씀인 듯 건네시던 아버님. 그렇게 공기처럼, 물처럼 늘 그곳에 계셔 주실 것 같던 아버님.

 13년 전 중풍으로 쓰러져 이제는 예전의 활발한 모습은 많이 없어졌지만, 자식 사랑의 깊이는 더 해만 가는 아버님, 하늘처럼 믿고 의지하던 아버님께서 입원을 하셨습니다.

 객지의 자식들이 걱정할까 비밀로 하셔서, 시댁 마지막 제사에 내려가니 그때서야 병원에 입원해 계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자식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아무리 일이 바쁘고, 살기에 급급하다고, 부모님의 저렇게 큰 변화조차 눈치 채지 못한, 저는 정말 불효한 며느리입니다. 내 새끼에만 눈이 멀고, 내 앞길만 헤쳐가기 바쁘다고 편찮으신 아버님의 상황을 체크하지 못한 제가 무슨 큰며느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근처에 사는 작은아버님께 아버님을 부탁하고 올라왔지만, 중풍으로 인해 드시는 약과 성분이 상충되어 편찮으신 곳에 대한 약 처방도 제대로 못하시는 아버님에 대한 걱정은 그저 매일 전화를 드리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 마저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바쁜데 뭐 하러 자꾸 전화 하냐”고 하시면서도 기분 좋은 숨소리에 며느리의 마음은 후회가 막심합니다.

 일주일을 더 지내시다가 퇴원하셨다는 말씀을 주시면서 “이제 살만하니 걱정 말고, 네 일이나 잘하거라.”하시는 아버님의 음성이 어찌 그리 감사한지.

 오래만 살아계셔 주시기를 바랍니다. 커다란 나무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드리워 계신 아버님.

 ‘수양산 그늘이 관동 삼백리를 덮는다’고 하죠. 시아버님의 그 넓으신 품이 우리 삼남매에게는 수양산 그늘보다 더 넓고, 더 편안합니다.

 아버님! 불효한 며느리를 뭐가 예뻐서, 그렇게 챙기시고 보듬어 주십니까. 그 마음이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 수 있게 아버님!!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

 이번 추석은 그래서 시댁으로 가는 발걸음이 더 가볍습니다. 하마터면 아버님을 놓치는 줄 알았으니까요.

 올 추석에도 현관을 들어서는 우리를,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 주실 아버님이 계셔서 며느리는 참 행복합니다.

/김미경 계룡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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