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헌묵 교수
최헌묵 교수

소통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리더십, 영향력, 통전성(통일되고 완전한 상태), 긍정적 변화, 문제 해결, 삶의 태도, 인간 관계, 비전과 성공, 자기 훈련, 후임 리더 계발, 몇 해 전부터 내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주제이다.
프로세스와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현대인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언제부턴가 소통부재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대결과 일방적 주의•주장만 난무하고 듣기 전에 말라고 말하기 전에 행동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우려스럽다. 소통부재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대화로 풀어가는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내겐 소중한 경험이다. ‘가르치며 배운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만약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 나와 같은 꿈, 나와 같은 관심, 나와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끔직한 일인가. 인간은 다양성의 상호 의존과 배려, 거기서 얻는 나름대로의 차별화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낀다. 더러는 자신만의 이상향을 거기서 찾곤 한다. 따라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소통은 시작된다.

소통과 대화에서 듣기가 먼저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대화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해야 하는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대화기술이다. 대화란 관계를 평화롭게 만들어가기 위한 기법을 말한다. 같은 말이라도 어감과 단어선택에 따라 충분히 소통될 수 있는 것이 불통이 되기도 하고 정반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소통엔 대화가 필요조건이고 대화에는 화술이 충분조건이다.
언어비중을 나눠보면 듣기 45%, 말하기 30%, 읽기16%, 쓰기 9%이다. 이렇듯 커뮤니케이션의 첫 번째는 듣는 것이다. 들을 청(廳)은 이(耳), 목(目), 심(心)과 내민다는 임(壬)자로 구성되어 있고 오른쪽의 글자는 큰 덕(德)의 옛글자로, 결국 듣는 것은 덕을 쌓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듣기만 잘 해도 상대는 자신이 인정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여긴다. 화가 난 사람과 상대해야 할 때는 일단 화가 난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듣기의 일종이다. 화를 뜻하는 노(怒)는 노예 노(奴)자와 마음 심(心)으로 이뤄져 있어 화가 나서 하는 말이니 진심이 아닌 경우가 많다.

정확히 말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불교 팔정도의 근본은 정언(正言)이라 할 수 있는데, 그만큼 말하기가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말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그만큼 가려서 해야 할 말들이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상하거나 좋은 관계를 망치기 싫으면 입을 닫아버리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참다가 한계상황에 오면 폭발하게 되고 진짜 관계가 단절된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이루는 패턴이다. 말하지 않고는 아무도 내 심정을 알 수가 없다. 솔직하게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말을 해야 한다.
듣기, 말하기를 다 잘 했는데 여전히 대화가 안 풀리고 소통이 안 되는 때가 많다. 그것은 갈등의 배경이나 성격에 따라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개인과 가정에서 발생하는 소통의 방해요소가 곧 사회 문제, 정치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지나친 경쟁과 스트레스로 심적 부담을 느끼면 소통이 제대로 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이다. 지방선거 운동이 한창이다. 아무쪼록 소통의 미덕이 발휘되어 선거 후에도 지역공동체가 평온하고 행복하길 빌어본다.
/ 최헌묵 한남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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