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네 주변을 거닐다 유모차를 끌고 다가오는 노부부를 만났다. 손주를 태우고 산책을 나온 것 같아 인사차 말을 걸었다. “어르신, 손줍니까?”, “손주가 아니라 자식일세.” “자식이라니요?” 팔순 노인이 웬 자식일까. 그것도 간난 아기 말이다. 농담이겠지 하고 호기심에 유모차 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유모차 안에는 아기가 아니라 몰티즈 새끼가 잠자고 있었다. “개자식이군요.” 나는 고소를 금치 못하며 나도 모르게 “개자식”이라고 했다. 개자식 하면 인간을 비하 하는 말이다. 개의 자식이라는 말이다. 무례한 놈이거나 사람 같지 않은 놈을 개자식이라 한다. 그래서 방랑시인 김삿갓도 비위에 맞지 않으면 그의 시에 개자식이라 표현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개가 정말로 못된 동물일까?. 그렇지가 않다고 생각한다. 개들은 인간이 사랑하는 만큼 충성심을 다하는 동물이다. 충성이 아니라 목숨을 바쳐서라도 주인을 섬긴다.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 프로그램 이야기다.
개를 키우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개는 할머니가 죽은 줄도 모르고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돌아올까. 할머니를 생각하며 먹지도 않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의 영정을 앞에 놓고 달래 보았으나 개는 자기를 사랑해 준 할머니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개는 죽었다. 그 애틋한 개자식의 마음을 누가 알까. 우리들의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 이야기다.
개는 영리한 동물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개는 개과에 속하는 포유동물로 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먼저 가축화 되어 인간과 인연을 맺었다. 개들도 인간에 의해 많은 변화를 가졌다.
오랜 동안 세계 각 지역에서 그들 사이의 선택, 교배에 의해서 현재 약 200여 종의 크고 작은 개들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의 경우 2만의 진동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나 개는 10만에서 70만의 진동수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소리의 가락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 훈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개는 사람에게 충성하고 의리가 있는 가축으로 우리나라에도 충견 설화가 많다. 그래서인지 개를 자식처럼 키우는 노인들이 많아졌다. 믿을 수 없는 사람, 배신하는 사람으로부터 상처 받고 괴로워하느니 의리 있고, 충성하는 개자식이 더 편하고 정이 가는 것이리라. 요새 자식들이 부모를 홀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는 그렇지 않다. 개는 사랑을 주는 대로 주인에게 충성을 한다. 개는 배반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노부모가 개를 사랑하는 이유일 게다.
/박민수 희망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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