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달 삼백육십다섯 개의 하루가 번호표를 달고 좌우 정렬하여 우리 앞에 나선다.
잉크냄새 신선하게 풍기면서 희망이라는 것을 건네어준다. 예약된 어느 날이 반짝거리는 시간을 잘 포장하여 늘어놓기도 한다. 그날까지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
그림자 같은 것도 언뜻 스치지만 잊어버리기로 한다. 미래라는 이름의 정해진 것 없음에 위안을 담고 새로이 만나게 될 세월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누구의 생일이 별다른 표식 없이 그곳에 있다. 빨간 동그라미 그리며 특별하게 만든다. 그 누구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면서.
동그랗게 말아 포장한 달력을 옆구리에 끼고 귀가하면 어쩐지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고 새해를 잘 준비하는 기분이 든다. 오래 써서 낡은 연장을 잘 추슬러 뒤꼍에 쌓아놓고 새로운 연장을 마련하여 기름칠하고 잘 닦아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연장통에 얌전히 늘어놓는 것 같다.
가만히 내 생일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찍혀있는 연도를 따라가며 생각을 더듬는다.
그 속에 꿈이 있고, 미래가 있다. 어릴적 소꿉장난하던 친구들도 보인다.
모든 달력이 12장으로 되어 있다. 첫 장 1월부터 한 장씩 넘겨본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열리고 겨울이 나타나면 12월 마지막 장이 남는다. 금방 일년이라는 세월이 열리고 닫친다.
가만히 다시 첫 장으로 돌아온다. 청마 새해를 시작하는 1월이다. 설경 그림이 눈에 파고 든다.
달력 그림은 사철 눈부신 산하의 모습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강산을 일깨워 준다. 다른 내용이라 하여도 대체로 점잖고 모나지 않은 그림들이 우리의 달력 속에 자리잡고 있다.
달력 앞에서 우리는 대체로 단정해 진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앞에 서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 누구도 남보다 많은 날을 담은 달력을 소유할 수 없다. 다만 달력 앞에 서는 자신이 어떤 달력을 소유할 것인가를 정하고 있다.
주어진 일년을 하루같이 사는지 천일처럼 사는지가 각자의 몫이고 금수강산을 바라보고 사는지 유명 화가의 그림을 보면서 사는지 연예인들의 얼굴을 보면서 사는지도 각자의 마음이다.
달력은 그저 삼백육십다섯 개의 하루를 담고 ‘어서 오십시오’ 인사하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시민리포터 유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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