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 중의 하나가 바로 미(美)이다. 미는 인간의 감각기관, 특히 눈을 통해 인식되고 그 인식된 아름다움은 마음에까지 타고 들어온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우리의 눈과 마음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뛰놀게 된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 아름다움의 대상은 우주의 대자연이 될 수도, 지구상의 온갖 무생물과 생물 그리고 변화무쌍한 갖가지 현상이 될 수도 있는 등 거의 무한에 가깝다.
온갖 생명을 비추는 태양은 아름답다 못해 눈부시며 동녘과 서녘을 붉게 태우는 해돋이나 해넘이의 황홀함 역시 아름다움 그 자체다.
동서고금을 통해 많은 시인들의 시상을 사로잡은 달, 밤하늘을 수놓은 별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존재들이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맑은 시냇물, 시원하게 부서져 내리는 은색의 폭포, 하얀 눈으로 소복단장한 고고한 산의 자태, 철 따라 바뀌는 자연의 변화, 온갖 숲과 나무, 형형색색의 꽃과 향기, 새들의 비상과 지저귐도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또한 젖꼭지를 물린 어머니와 아기, 남녀의 지순한 사랑, 착한 마음씨, 교향악의 선율 등도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들이다.
하느님도 이 세상을 창조하고 ‘보기에 좋다’고 하셨듯 정녕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많은 외적 내적인 아름다움 중에서도 참회와 고백, 용서하고 화해하는 마음과 행동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다.
참회는 자신의 잘못이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이요, 고백은 자신의 잘못이나 죄를 상대에게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요, 용서는 자신의 잘못이나 죄에 대해 상대로부터 자비를 구하는 것이며, 화해는 상대방으로부터 용서를 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평화다.
누구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많은 잘못이나 죄를 짓는다.
잘못이나 죄는 결국 자신을 얽매게 할 뿐 아니라 상대를 얽매게 하는 사슬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얽매임의 사슬도 참회와 고백과 용서와 화해를 통해 서로를 자유롭게 해준다.
자신과 이웃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 이보다 더 큰 기쁨을 주는 내적 아름다움이 어디 있겠는가?
아름다움의 상대는 추함이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 추함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추함이 없다면 아름다움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잘못과 죄는 분명 추한 것에 속한다. 그러나 이 추함은 참회와 고백과 화해를 통해 언제나 아름다운 새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한다.
/이용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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