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종묘제례, 판소리, 강릉 단오제, 남사당놀이, 매사냥, 줄타기, 아리랑 등 16건의 인류무형유산을 지난 5일 등재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이 중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김장이다. 다른 유산들은 일부 전승자들에 의해 계승되어온 반면, 김장은 우리 민족 모두에게 유전자에 각인된 듯 친근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사실 외국 여행을 오래하다 보면 그리워하는 것 중 하나가 김장김치 맛이다. 엄동설한에 정신이 번쩍 나도록 차가운 김치를 한입 베어 먹는 맛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가 없다.
외국의 웬만한 도시마다 한국음식점이 있어서 김치가 귀하지는 않다. 하지만 생각만 해도 입가에 침이 괴는, 그 싸하고 깊은 맛의 김장김치는 아니다. 김장김치 못지않게 그리운 것 중의 하나는 또 김장문화이다.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동네마다 시끌벅적 잔치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웃이나 친척들이 함께 모여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 하며 돌아가면서 김장을 담그고 왁자지껄 웃음과 음식, 정을 나누는 것이 연중행사였다.
간간하게 절여진 샛노란 배추 고갱이에 잘 버무려진 김치 속과 편육을 얹어 먹는 맛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잊지 못할 추억의 맛이다. 유네스코는 김장이 겨울철 주민들의 나눔과 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며 사회 구성원들 간 결속과 연대감을 강화함으로써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부여한다고 평가했다.
우리 민족이 김치를 즐겨 먹은 것은 고려 때부터로 보인다. 삼국시대에 이미 여러 가지 채소를 소금이나 장, 식초들에 절여 먹었다는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파 마늘 생강 등 양념을 넣은 김치는 고려 때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순무를 장에 넣으면 삼하(여름 3개월)에 더욱 좋고 청염(소금물)에 절여 구동지(겨울 3개월)에 대비한다”고 기록, 김장 풍속을 시사했다.
이어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고추가 유입되면서 지금의 맵고 붉은 색 김치가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김치와 비슷한 채소 절임은 사실 다른 문화권에도 있다. 하지만 지역 구성원들이 함께 품앗이의 형태로 연중 한 번씩 대량으로 만드는 풍속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치’ 자체 보다 ‘김장’이 유산으로 등재된 배경이다.
이번에 인류무형 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정확히 ‘김장, 한국에서의 김치 만들기와 나누기’이다. 우리는 가난했던 시절, 겨울을 나려면 집집마다 세 가지를 준비해야 했다. 쌀과 연탄 그리고 김장이었다. 쌀 두어 가마니 사들이고 연탄 그득하게 쌓아놓고 김장까지 끝내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던 것이 70년대 80년대 서민들의 삶이었다.
가구당 김장 분량은 보통 배추 100포기 이상. 이웃들 간 돌아가며 돕는 품앗이 없이는 어려운 노동량이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김장문화도 전 같지 않다고 한다. 도시화, 서구화, 상업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하면서 김장독은 구경하기도 힘들게 되었고, 무엇보다 김장 규모가 대폭 줄었다.
겨울철에도 채소가 흔한 데다 젊은 세대의 식성이 서구화해서 김치를 잘 먹지 않기 때문이다. 김장문화도 소수의 전승자에 의해 이어질 날이 머지않았다.
/최은진 시민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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