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자 <시인?前서울사대 부설 여중 교장>

우편물 중에 돈 안내는 데도 오는 것이 하나 있다. 「계룡사랑이야기」라는 계룡시의 소식지다. 기관에서 만드는 그런 류의 책들 중 콘테스트를 하면 등수 안에 들 거라 생각되게 예쁘게 잘 만든 작은 책자다. 지난 번 책자에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계룡산 생태탐방 누리길> 안내다. 총 8.9Km이고 3시간 32분이 걸린다는 그 길을 바로 다음날 우리 부부는 찾아갔다. 전에는 군사보호구역이라 통제되던 곳인데 군이 허용하여 시가 새로 만든 산책 코스라 한다.
군본부교회 주차장 옆길로 들어가니 전혀 가다듬어지지 않아 호젓하고 좋은 숲길이 나타난다. 아들바위라는 바위까지는 평평한 산길이다. 구멍에 돌을 던져 들어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 이야기가 재미있다. 요즘은 딸을 더 반가워하는 시대가 되었고 아들만 둘인 우리는 딸 없는 허전함을 느끼며 사는데-. 우리 젊을 때만 해도 아들이 둘이나 된다고 다들 부러워했으니 세상은 이렇게 변하는 것이다.
아들바위서부터가 본격적인 산행이다. 아직 목책도 줄도 없고 길 안내도 잘 안 되어 초반에 미끄러운 길을 치고 올라갔다. 이렇게 두면 온 산이 길이 되어버려 산이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가파른 산길이다. 한라산 웃세오름이나 대청봉 정상에 데크를 깐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거기서 시루봉까지는 계속 좀 숨이 차다. 누리길 설명에는 난이도를 ‘중’이라 했는데 나이 60이 넘은 우리에게는 ‘상’ 수준 같다.
왼쪽으로 골프장을 보면서 계속 능선을 타고가다 시루봉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세동마을이라고 유성 오고갈 때 지나는 긴 터널길이 눈 아래 있다. 왼쪽으로는 아파트들과 상가들이 모여 있는 계룡시내를 멀리 보면서 걷는다. 이쪽 저쪽 다 정겹다. 아래서 보면 일부만 보이고 위에서 보면 전체가 보인다. 우리 사는 게 그렇다. 늘 가까운 것만 보며 사니 전체를 보지 못하고 전체를 보지 못하니 걱정과 근심을 안고 사는 것이다.
관암산 가는 길에 계룡시 뿐만 아니라 삼군 본부 전체가 다 보이는 곳이 나타난다. 이렇게 대한민국 군의 심장부가 다 보여도 되나 걱정이 되는 걸로 보아 우리 부부는 계룡시민다운 안보관을 가진 것 같다. 한편 우리 국방력의 자신감을 믿게 된다.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고 새긴 콘크리트 기둥이 능선길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관암산을 지나 밀목재로 내려올 때까지 늦은 가을의 스산한 정취를 듬뿍 맛보았다. 내려오는 길에 비도 조금 뿌려서 더 그랬다. 가을은 이렇게 가고 이제 겨울이 오려나 보다.
밀목재는 서울서 오자면 동학사 지난 시외버스가 깊은 산으로 들어서는 그런 느낌을 주는 길이다. 계룡 시민 입장에서는 여기서부터가 바로 계룡이지 싶은 그런 곳에 괴목정이 있다. 내 친구들은 동학사 벚꽃길보다 동학사 지나 나오는 밀목재, 괴목정길에 더 감탄한다. 동학사 진입로가 상술에 점령당했다면 계룡 진입로는 숲속으로 난 멋진 드라이브길인 것이다.
그 길가에 데크길이 났다. 좁은 길이라 차로부터 보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긴 데크길 위에 노란 은행잎이 가득 쌓여있으니 더 멋지다. 데크 길은 1.2Km, 과목정에서 계룡대CC까지는 2.6Km다. 우리는 차를 세워 둔 교회주차장까지 더 걸어가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천천히 걸었어도 3시간 가량에 다 걸었으니 우리는 아직 늙지 않은 것 같다.
계룡으로 이사 와서 산책길에 굶주린 우리 부부는 그날 계룡시 작은 책자 「계룡사랑이야기」가 안내한 대로 손때 묻지 않아 순수하고 고즈넉한 계룡산 둘레길을 즐겼다. 그리고 우리의 계룡 사는 이야기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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